나는 30년 이상 입시전문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의 기쁨과 환호, 한탄과 좌절을 생생하게 목격하며 살았다. 나는 단 한 번도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어디 속해 본 적이 없다.

해마다 12월 수능성적이 발표되면 모든 대학이 수시합격자를 발표한다. 이어 사흘 동안 수시합격자 등록 기간이 설정된다. 그 다음에는 일정 기간 매일 수시 미등록 충원 합격자를 발표한다. 당신의 아이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의대 또는 최상위권대학 인기 학과에 지원했는데 미등록충원 마감 하루 전날 후보 2번 상태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미 등록한 두 아이가 다른 학교로 옮겨 가길 밤새워 기도할 것이다. 마지막 날 휴대전화를 들고 애타게 기다렸지만 아이는 결국 후보 1번으로 탈락한다. 나는 오랜 기간 입시 업무에 종사하면서 이런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다시 가정해보자. 아이는 결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를 보니 그때 내 아이가 지망한 학과에 한 학생이 허위 서류를 제출해 합격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일어난 일이다.

나는 정경심 교수의 입시비리 항소심에서 7대 스펙이 모두 유죄로 판결된 이후의 각계 반응에 주목했다. “선입견 가득한 판단이다. 재판부의 논리를 그 시대에 입시를 치렀던 사람들한테 랜덤(무작위)으로 조사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변호인의 말이다. 이 무슨 해괴한 변명인가. 그 시대에 다수의 사람들이 허위 서류로 합격했는데 피고인 집안만 판사의 ‘확증 편향적인 선입견’과 ‘검찰의 먼지털이식 별건 수사의 희생양(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말)’이 됐단 말인가. 나는 30년 이상 수험생을 봐 왔다. 지방에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런 의심을 살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때도 돈과 권력, 정보를 가진 사람 중 일부는 수시 지원을 할 때 그런 불법과 탈법 행위를 별 죄의식 없이 저지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었을 따름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입시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대학교수가 입시제도의 공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훼손해 누군가가 피해를 봤다”라는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최하위권 학생이 서류를 위조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는데도 반성은커녕, 범행의 본질을 흐리고 내용을 잘 모르고 서류 작성에 도움을 준 제삼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점도 질타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혐의를 인정하며 반성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시대 탓, 제도 탓, 남 탓하는 피고인 측과 그에 동조하는 정치권은 한심함을 넘어 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다. 상대를 비난하는 야당 인사들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당신들 역시 일부 여당 인사와 조금의 차이도 없이 온갖 기득권을 누리며 불법과 탈법, 반칙을 특권처럼 자행하며 살지 않았는가?

“형량을 먼저 정해 놓고 내용을 끼워 맞췄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으며 백번 양보해 그러한 행위가 실제 있었다고 가정할지라도 지나치게 가혹한 결정이고 검사 한 사람의 독단과 검찰조직의 오만이 한 가정을 파괴하고 국가의 역량을 심각하게 소진했다”라는 이낙연 의원의 말은 또 무슨 희한한 궤변인가. 최종 후보로 불합격해 지금까지 가슴을 치며 살지 모르는 피해자의 입장은 왜 한 번도 말하지 않는가. 당신들 세계에서는 그런 부정과 불의가 일상적이지만, 단지 재수가 없어 당했다는 말인가. 정말로 검찰과 사법부가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었다면 전 국민이 봉기해야 한다. 나는 그 누구 보다 앞장서서 투쟁할 의사가 있다. 이런 검찰, 이런 사법부를 두고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지금은 예민한 감성, 상상력과 창의력이 생존수단인 시대다. 교과, 수능 성적에 의한 한 줄 세우기를 지양하고 학생의 창의력과 잠재능력을 중시하는 선발방식이 학생부종합전형이다. 학종의 문제점은 공정성이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신뢰받지 못하는 정성평가는 수많은 젊은이에게서 도전정신과 꿈을 빼앗아간다. 그러니 국민은 불공정하고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제도보다는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공정성 시비가 없는 지극히 후진적인 선다형과 단답형 수능을 선호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의식 수준이 이러니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를 뽑는 제도를 만들 수 있겠는가?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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