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담장 안의 망초들이/ 마른 꽃을 달고/ 어둠에 잠긴다/ 선 채로 죽어버린 일년생 초본/ 망초 잎에 붙은 곤충의 알들이/ 어둠에 덮여 있다/ 발을 묶인 사람들이 잠든/ 정신병원 뒤뜰엔/ 깃을 웅크린 새들이 깨어/ 소리 없이 자리를 옮겨 앉는다/ 윗가지로 윗가지로 옮겨가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망초가 망초끼리/ 숲을 이룬 담장 안에 와서 울던/ 풀무치들이 해체된/ 작은 흔적이 어둠에 섞인다/ 모든 문들이 밖으로 잠긴/ 정신병원에/ 아름답게 잠든 사람들/ 아, 풀무치 한 마리 죽이지 않은/ 그들이 누워 어둠에 잠긴/ 겨울, 영하의 뜨락/ 마른 꽃을 단 망초

「망초꽃 하나」 (문학세계사, 1983)

추운 겨울날 정신병원 담장 안은 을씨년스럽고 스산하다. 말라죽은 망초는 그 분위기를 더욱 쓸쓸하게 이끈다. 설상가상 얼어 죽은 곤충 알과 풀무치 시신이 겨울, 영하의 뜨락을 한끝 우울하게 가라앉힌다. 이에 아랑곳없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담장 안에 무단히 갇혀 잠자고 있다. 깃을 접고 몸을 웅크린 채 추위에 떠는 새들이 해가 떠오르길 고대하며 윗가지로 옮겨 앉는다. 풀벌레 한 마리 죽이지 않은 생명들에게 춥고 음습한 어둠이 걷히고 따스하고 밝은 빛이 찾아오길 소망하면서.

그 담장 안은 절망과 죽음의 기운이 무겁게 내려누르는 어두운 공간이다. 담장에 둘러싸인 사람은 죄가 없다. 살벌하고 험악한 세상에서 너무 맑고 연약한 영혼을 가진 게 죄라면 죄일 것이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생존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삶의 고통과 착한 자의 고된 운명을 견뎌내지 못한 채 끝내 정신 줄을 놓아버린 터다. 세상을 바로잡을 힘과 지혜도 없고 담장 안에 갇힌 자들을 치유하고 구원해줄 뾰족한 방도도 없다. 다만 따스한 연민과 사랑의 눈으로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연약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은 강인하지 못한 사람이다. 정신병원 담장 안에 갇혀 있는 사람과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이심전심 소통함으로써 동병상련의 애틋한 정이 절로 솟아날 법하다. 그런 이유로 감정이입이나 공감은 자연스런 귀결인 셈이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오롯이 가슴에 와 닿는 건 당연하다. ‘아름답게 잠든’, ‘풀무치 한 마리 죽이지 않은’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잠재된 본능에 터 잡은 자기애의 무의식적 발로일 것이다.

시인은 가끔 자신의 아바타를 작품 속으로 슬며시 들여보낸다. 추위에 떨며 해가 떠오르길 간절히 기다리는 새가 그 숨은 의도를 살짝 드러낸다. 어둠에 잠들지 않고 윗가지로 자리를 거듭 옮겨 앉으며 목 빠지게 해를 기다리는 마음은 애절하다 못해 측은하다. 새의 간절한 몸부림이 어둠을 몰아내고 따스한 기운을 불러온다면 얼마든지 새들을 더 불러들일 각오가 엿보인다. 춥고 어두운 곳에 온기가 돌고 빛이 들길 바라는 마음이 짠하다.

부정적 현상이 개선될 기미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긍정의 시각을 잃지 않는다. 세상의 모순과 삶의 부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면서도 현실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서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끈질긴 긍정적 에너지를 느낀다. 어찌할 수 없는 모순과 부정마저 ‘생명에 대한 외경’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실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닿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시적 긴장에 닿을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을 음미해본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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