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은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 준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티타임의 관습이 있었다.

나치는 티타임에 사용되는 식기용 대접을 수용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급된 대접은 청결할 리가 없었다.

깨끗하지 않은 식기용 대접에는 몇 번이나 우려낸 묽은 찻 물이지만 수용자들은 하루 한 번씩 차를 배급 받았다.

수용소 생활에서 물이 너무 귀해 수용자 일부는 그 차를 단숨에 마셔버리는 반면 일부는 반만 마시고 반은 얼굴이나 손발을 씻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생존율은 후자가 더 높았다. 전자는 동물적 본능에 충실했고 후자는 인간적 본능에 따른 것이다.

지급된 물을 두고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남은 것이다.

이를 두고 이야기의 기원 저자 브라이언 보이드는 인간의 생존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의식주보다 문화와 예술에 근거해 주장하고 있다. 문화나 예술이 인간을 더 잘 살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문화나 예술은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고 있고 현대에 와서는 언론의 자유를 소중한 가치로 꼽고 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단 하루라도 유혹에 자유로운 날이 없다. 특히 권력을 손에 쥔 정치인들은 유혹을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 모든 인간이 유혹하고 유혹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권력의 유혹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유혹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활동이고 생존이다. 사랑과 정치를 포함한 모든 인간 활동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심리게임이자 유혹이다. 현대의 선거전략, 광고전략, 마케팅 전략 모두는 유혹의 기술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유혹의 역사다.

현대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리는 로버트 그린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유혹’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혹의 기술’에서 역사상 대표적인 유혹자들을 나열한다.

역사상 으뜸가는 유혹의 대가는 단연 클레오파트라다. 그녀는 가장 위험하고 가장 극적인 유혹의 기술을 가진, 삶 자체가 유혹의 전형이었다. 카이사르는 그녀를 위해 로마 제국을 포기했으며, 안토니우스는 그녀 때문에 권력과 생명까지 잃었다. 많은 유럽 지성인들의 가슴과 영혼,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니체로 하여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하게 했으며,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동거하며 시적 영감을 불어넣기도 했다.

나플레옹의 연인 조세핀 역시 마음을 주는 척하다가 갑자기 냉정하게 돌아서서 상대를 달아오르게 하여 매달리게 하는 유혹자였다.

카사노바는 여성을 만나는 순간부터 상대를 연구해 원하는 바를 미리 파악해 상대의 기분을 맞춰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행동으로 채워주었다.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이른바 ‘언론 징벌법’이라고 불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데 대해 언론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권력 유지를 위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비판의 한 몫으로 차지하고 있다.

언론중재법은 언론사 매출액을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으로 삼는 등 위헌 소지가 다분하지만 민주당은 ‘가짜 뉴스를 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언론 단체들은 “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이 막대한 액수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무기로 언론사를 겁박함으로써 시민의 알 권리는 무시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되돌려 군사정권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국격을 떨어뜨렸다”고 했다. 친여 성향 언론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차도 “언론의 비판적 역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을 전면 수정하라는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도 심히 유감”이라고 했다.

사이렌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키려 할 때, 지혜로운 오딧세우스는 선원들에게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는 자신을 밧줄로 꽁꽁 묶어 달라고 했다. 오딧세우스가 사이렌의 유혹에 끌려 풀어달라고 소리쳤지만 선원들은 귀를 막아놨기 때문에 듣지 못했다. 그래서 모두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권력을 쥔 지도자와 참모는 이래야 한다. 국민들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치인을 기대하고 있다.

김창원 경북지사 부국장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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