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군에 대해서는 올 봄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고등학교 1학년이 대구시교육청 책쓰기 프로젝트로 소설집을 냈다는 기사를 읽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에세이나 기행문 등 비교적 가볍게 쓰고 부담 없이 읽을 만한 글을 책으로 묶는 것이 요즘 추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상 대학입시를 대비해 학원에 다니기도 바쁠 고등학생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소설집을 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간결한 문장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 깜짝 놀랄 반전까지 소설의 흥행요소를 모두 갖췄다’고 평한 기사 내용에도 구미가 당겨 유군을 초청하게 됐다.
유군이 펴낸 소설집 제목은 ‘아몬드 크루아상 실종사건’이다. 이 책에는 소설집의 제목으로 삼은 대표작 ‘아몬드 크루아상 실종사건’과 ‘어느 시간여행자의 모험’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주인공 ‘나셜록’이 애지중지하며 냉장고에 넣어둔 아몬드 쿠루아상이 없어지자, 범인을 찾아가는 스토리다. 작가의 추리력과 과학적 지식이 총동원된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사건 해결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두 번째 작품은 고생물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주인공 ‘나’가 인류에게 다가올 절망을 해결하기 위해 차원이동 프로젝트의 선발대로 참여하면서 펼쳐지는 모험을 담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난 토요일 토크콘서트에 앞서 확인됐다. 무대에 오르기 전 유군을 만났을 때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16년 용학도서관에서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도서관협회가 주최하고, 단위 도서관이 주관하는 ‘책 읽는 가족’은 가족 단위 독서운동을 장려하기 위한 캠페인성 행사다. 지난 한 해 동안의 도서 대출량, 가족 참여도, 이용 성실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인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유군 가족 모두가 독서를 즐기는 ‘책벌레’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더 놀라운 이야기는 행사 중 유군의 발언에서 나왔다. 유군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지난해 대구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는 바람에 도서관이 문을 닫기 직전까지 주말마다 도시락을 들고 용학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TGIL(Thanks God It’s Library)’을 외쳤다. 미국인들이 주말의 해방감을 나타내는 ‘TGIF(Thanks God It’s Friday)’를 도서관 버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도서관이, 독서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만난 유군의 어머니도 대단한 분이란 느낌을 받았다. 학원을 비롯해 학습지조차도 과외공부를 시킨 적이 없다고 했다. 오로지 아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아 책읽기에 전념했다는 것.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과외공부를 시키는 것을 보면서 흔들리지 않았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젠 확인했다”고 힘주어 답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어릴 적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고, 하버드 졸업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라고 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날 행사는 지역사회 주민의 시민역량 강화를 목표로 삼는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또한 공공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많지 않은 기회였다. 문헌정보학과의 주요 과목인 정보봉사론을 살펴보면 도서관 정보봉사를 통한 생애교육이 강조되는 ‘도서관대학’이란 이론이 1930년대에 등장한 적이 있다. 당시 실행되지 못했지만, 도서관이 제공하는 지식정보를 활용해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줌으로써 시민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평생학습을 하도록 하자는 이론이다. 아무쪼록 도서관 및 독서와 함께 성장하는 유수혁 작가의 미래를 응원한다.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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