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호 상주역사공간연구소장.
▲ 김상호 상주역사공간연구소장.








상주는 낙동강 700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낙동’은 낙양(상주의 옛 지명)의 동쪽에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경상도라는 지명은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상주가 경상도의 뿌리인 ‘역사의 고장’이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장원 급제자를 10여 명이나 배출한 인재의 보고였으며, 퇴계학과 양명학,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학문과 사상을 함께 포용한 열린 사고를 가진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상주는 과거의 화려한 역사에 걸맞은 잔존 문화유산이 빈약하며, 내세울 만한 대표적 유산도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상호(61) 상주역사공간연구소장은 상주의 화려했던 옛 문화를 되찾고자 노력하는 열정적인 활동가이자 상주를 대표하는 명품 일꾼이다.

김 소장은 상주에서 향토 사학자라는 외길을 26년 동안 걸어 온 장본인이다.

특히 상주 최초의 선사 유적을 발견했으며, 상주의 문화에 대한 논문도 50여 편을 발표할 만큼 상주 역사와 문화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통한다.

김 소장은 고등학교 재학 중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후 줄곧 상주에서만 근무했다.

40년 넘게 공직에 몸담은 후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그래서 상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단다. 이 같은 마음으로 상주 문화의 뿌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김 소장이 상주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은 1994년이다.

우연히 ‘상주 읍성도’를 본 후 상주의 문화와 역사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는 “지금처럼 시원하게 트인 평평한 도심에 읍성이라는 대형 구조물이 있었다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며 읍성도를 처음 본 당시의 느낌을 설명했다.

문화와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져버릴 수 없었던 그는 퇴직한 다음 날 연구소를 차렸다.

공무원 때는 할 수 없었던 왕성한 연구에 나선 것이다.

또 경북향토사연구회와 상주향토문화연구소의 연구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가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일로 꼽는 게 있다. 2016년에 상주의 선사 문화유적인 ‘낙동 물량리 인물 암각화’를 발견한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임각화로 판명됐으며 언론과 학계가 김 소장이 발견한 암각화를 일제히 주목했다.

이 암각화는 다음 달 영국 옥스퍼드대가 발간하는 고고학 전문 학술지인 ‘아케오프레스’ 세계의 암각화 동향 6집에 게재돼 세계적으로 알려질 예정이다.

2018년에는 20여 년 틈틈이 조사 연구한 암각 문화 59개소 유적을 ‘경북 상주지역의 바위 글과 그림’이라는 전문 학술지로 펴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상주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윷판 암각화 여러 개를 찾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선사 유적 발굴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상주의 문화를 연구해 논문 50여 편을 썼고, 2015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하는 ‘전국향토문화공모전’ 논문 부문에서 대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또 2019년과 2020년 전국향토문화공모전에서 연속 특별상을 받는 등 상주 문화 알리기에도 한몫을 했다.

상주읍성을 복원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도 그가 거둔 성과 중 하나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상주읍성을 복원하고자 20년이 넘는 세월을 투자했단다.

각종 문헌을 샅샅이 뒤지고 현장 조사를 한 끝에 지난해 ‘상주읍성’이라는 학술지를 발간하게 됐다. 지난 6월부터는 시민을 대상으로 옛 상주읍성 터를 답사하는 야간 프로그램인 ‘상주읍성 골목야행’을 운영하며 읍성 복원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김상호 소장은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가고 있는 지역의 바위 구멍(성혈)인 유적 100여 곳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상주의 뿌리를 찾는 시발점이자 종착점”이라고 설명했다.







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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