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왕 찐 천재

발행일 2021-08-29 15:22:4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부터 바빠진다. 비설거지하고 자리에 앉으니 카톡이 울린다. ‘비가 창밖에 내리니 그리움도 가슴에 내리네요. 우산을 준비할까요. 그대 생각을 준비할까요. 내리는 빗방울 수만큼 웃을 일도 많은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분위기 있는 아침이면 늘 참신한 문자로 꼭 기별하시는 진정한 천재의 소통법이다. 언제나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시는 어른께 ‘선생님의 다독임으로 설사 얼굴 붉힐 일이 생기더라고 한 박자 쉬고 순조롭게 잘 해결할 것 같은 하루 시작합니다’라고 정성스레 답장을 적어 보낸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보니 신경 쓸 일이 정말 많다. 크게 보면 날마다 마주할 일상이지만, 처음이라 답답하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담담히 대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만, 미숙해 행여 상대의 마음이라도 다칠까 조심스럽다. 어느 친구가 잘 지내느냐고 묻기에 하루하루 신기한 경험이 참말로 많다고 했더니,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무던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또 그날그날이 그냥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며 시간이 약이라는 말로 응원해줬다. 응원의 천재다. 무엇으로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내가 개업한 이후부터 운세를 보내오곤 한다. 우연히 본 띠별 운세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될 수 있으니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습관은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동네의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으니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면 미리 주의하세요’였다. 모르고 지날 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운세가 갑자기 그대로 맞아서 떨어진다면 어쩌나 불안했다.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며 말도 행동도 조심했다.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미리 듣고 보니 자꾸 걱정스러운 얼굴이 돼갔다.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에 미리 마음 졸이며 산다면 그 얼마나 시간 낭비일까 싶었지만, 신경은 계속 쓰였다.

일전에 찾아온 원로 선배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분은 해방둥이로 태어나 정말 안 겪어도 될 일들을 많이 겪으셨다고 했다. 언젠가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은 무슨 띠인가요?” 그랬더니 “돼지”라고 답하셨다.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날마다 보내오는 운세에 적인 띠와 연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멀리 팔공산 자락에 근무하면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병원 일 마무리할 즈음에서야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오셨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 조금 안정되기를 기다려 궁금했던 그 띠를 다시 여쭸다. “선배님 태어난 해의 띠가 돼지띠 맞는지요?” 그러자 “다른 사람은 아니고, 나만 돼지”라고 하시더니 “왜냐하면 나는 살이 쪄서 돼지야.”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 박장대소했다. 어떤 어려움과 슬픔이 있어도 그분 앞에만 서면 무조건 웃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그야말로 ‘웃음의 찐 천재’시다. 아무런 내색 없이 어려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대장부, 찐 천재 선배님. 그분이 선사하는 웃음으로 하루하루 삶을 즐기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우연히 펼친 신문에서 개그우먼 홍진경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월에 유튜브를 시작해 그 사이 88만 구독자가 생겨나 연예인 유튜브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수학 포기자를 뜻하는 ‘수포자’, 하나뿐인 딸을 위해 만들었다는 그 제목을 보니 흥미가 일어 끝까지 읽었다. 깔깔대며 수학을 풀 수 있도록, ‘공부 왕 찐 천재’가 수학 포기자들의 희망이 됐다는 소식.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일차방정식을 가르치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일차함수를 설명한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지수 원칙을, 문과 천재였다는 나경원 전 의원은 ‘꽃’이라는 시를 읊었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발을 들여서 이곳으로 가라면 가고, 저곳으로 가라면 가서 일했지만 가는 곳마다 행운이 따랐다는 그녀는 초심자의 행운을 누렸다고 회상한다. 어느새 방송 시작한 지 29년이나 됐다는 홍진경은 고등학교 1학년, 모델 대회에서 상을 받아 데뷔했고 지금도 기억나는 알록달록 베네통 옷을 입고서 모델로 서지 않았던가. 개그우먼으로 웃게 만들고 또 자신의 건강 문제로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도 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그런 경험, 어려운 터널을 잘 통과하고서야 얻을 수 있는 값진 것이기에 오늘 빛을 볼 수 있지 않았으랴.

일하느라 학창 시절에 공부할 시기를 놓쳤고 사업하면서 육아할 때 아이한테 많이 미안했다는 그녀의 기사에 가슴이 찡해왔다. 아이가 무엇을 물어볼 때 당당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 시작했다는 그녀의 유튜브, ‘공부 왕 찐 천재’. 또 성장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멋진 모습일 수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엄청 큰 기쁨이 있기를.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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