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의 신 새벽은 개 두 마리 환호로 열린다/시선암 산책로의 노송 숲에 이르러/문득 그 눈망울 초롱초롱 산 노루도 만난다//지난 봄 돌밭에 심은 귤나무들 돌아본다/그 혈색 곰곰 살피며 다독인다 북돋운다/긴긴 해 8월 땡볕은 아껴 써도 모자라//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올망졸망 산마을같이/그 마을 양철지붕 성당의 종소리같이/은은히 저무는 하루 두 손 고이 모은다

「해동의 들녘」(2021, 문학과사람)

강문신 시인은 제주 출생으로 1990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당신은 “서귀포…”라고 부르십시오’, ‘어떤 사랑’, 현대시조 100인선 ‘나무를 키워본 사람은’과 ‘해동의 들녘’이 있다.

‘하루, 하루’를 보자. 결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사다. 농장을 경영하면서 겪는 일이다. 농장의 신 새벽은 개 두 마리 환호로 열린다, 라는 구절은 사실 그대로이지만 생동감이 넘친다. 하루를 새로이 맞으면서 시무룩하다면 그 사람의 하루는 실패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환호작약하면서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면 그 사람의 하루는 이미 빛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시선암 산책로의 노송 숲에 이르러 문득 눈망울 초롱초롱한 산 노루를 만나는데 그 일 역시 일상이다. 한라산 부근 산자락에 일터가 있기에 노루를 만나는 일은 놀랄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봄 돌밭에 심은 귤나무들을 돌아본다. 그 혈색 곰곰 살피며 다독이고 북돋운다. 긴긴 해 8월 땡볕은 아껴 써도 모자라기에 부지런을 떨다보면 어느덧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올망졸망 산마을같이, 그 마을 양철지붕 성당의 종소리같이 은은히 저무는 하루를 맞게 된다. 그때 화자는 다만 두 손 고이 모을 뿐이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했기에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뿌듯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루, 또 하루를 맞고 보내는 중에 소소한 행복감을 맛본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천혜의 영지에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땅의 기름진 복을 넉넉히 누리고 있으니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터다. 화자는 이와 같은 행복이 너무나도 귀해서 해질 녘이면 늘 두 손을 모을 것이다.

그는 ‘그만큼만’이라는 시조에서 관계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 무수한 만남 속에서 삶이 영위되다가 보면 여러 사람들과 만난다. 속 깊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 있을 테고, 가볍게 스쳐 지나는 이도 있다. 너와 나 우연히 만나 기뻐한 세월만큼 그만큼만 아프게 해, 라는 대목을 통해 친밀한 만남이 예기치 않은 균열을 겪게 되는 정황을 엿본다. 곡해일 수도 있고 어느 한 쪽의 잘못일 수도 있다. 그러나 퇴적된 그 믿음이사 산이지 큰 산이었어, 라는 화자의 다짐에서 끝까지 신뢰하고픈 간절한 열망을 읽는다. 더구나 어질머리 이 세태에서 더욱 그것은 꼭 지키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화자는 더러는 세상일을 모르고도 살아가듯 딱히 무슨 연유인가 묻기도 뭐 그런 것을 넌지시 말하면서 그 인연 없었을 때만큼, 그만큼만, 그만큼만…가, 라고 노래하면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다독인다.

강문신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하노라고 했지만 쭉정이다, 라면서 그 쭉정일 보듬은 농심을 거론하고 있다. 어찌 쭉정이이랴? 시조 사랑으로 귤나무를 가꾸고 있고 귤나무를 키우면서 시조 쓰기를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시인이기에 편편이 알곡이다. 삶의 애환이 잘 녹아 있어 깊은 울림을 안긴다.

그의 시업의 길에 더욱 부신 빛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