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실/ 따라서 가면/ 가슴 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내올 듯// 머언/ 극락정토 가는 길도/ 보일 상 싶다

「가슴엔 듯 눈엔 듯」 (중앙문화사, 1966)

자수는 천이나 가죽에 원하는 문양이나 그림을 그려 본으로 삼고, 실이나 끈 등을 바늘이나 바늘 모양의 도구에 꿰어 천이나 가죽에 그 밑그림을 새겨 넣는 것이다. 통상 밑그림을 그려놓고 수를 놓지만 밑그림 없이 바로 수를 놓는 달인도 적지 않다. 그 수법이 섬세하고 치밀해 숙련과 인내 그리고 정성이 요구되는 기술이다. 실의 꼬임이나 굵기의 차이를 응용하면 문양의 질감이나 그림의 입체감·원근감 등을 잘 살려낼 수 있다.

수놓기는 눈과 손 그리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야 하는데다 섬세함과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고 심미적인 감각까지 갖춰야 하는, 여성에게 어울리는 숙련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자수는 오래 전부터 여성의 전문 영역으로 뿌리를 내렸다. 여성은 집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까닭에 좁은 생활반경에서 오는 심적 고통을 감내하고 설상가상 여성이 받아야 하는 사회적 차별을 극복해야 했다. 자수는 그 고뇌를 견디는 방법이자 힘든 운명의 극기 수단으로 유용하게 기능했다.

자수는 여러 가지 불리한 전통적 환경과 열악한 상황에 직면한 여성에게 꼭 들어맞는 처방이자 없어서는 안 될 탈출구로 광범하게 받아들여졌을 법하다. 자수는 심신을 한 곳에 모이게 유도함으로써 복잡한 심적 갈등을 가라앉히고 맑은 심성을 도야하는 도구로 안성맞춤이다. 이젠 남녀를 초월해 스트레스를 힐링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일반화됐다. 자수용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자수바늘을 든다.

잡다한 근심과 자잘한 걱정을 잊고 정신건강을 다스리는 일은 비단 자수만이 아니다. 일상의 다른 단순작업에서도 심심찮게 경험한다. 삽질이나 농사일과 같은 육체노동을 하다보면 성과와 무관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텃밭이나 분재를 통해서도 두뇌를 쉬게 하고 정신의 순화를 얻을 수 있다. 굳이 그렇게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집안청소나 설거지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각종 취미생활도 본래의 목적보다 부수적이라 할 수 있는 정신수양에 더 치중하는 편이다.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오히려 일반적인 상황이 됐다.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단 성취감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주말농장에서 땀을 흘리고 개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정신건강을 노리고 반려견을 선택한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자수 속 세상으로 들어가서 ‘처음 보는 수풀’과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서 노닐다보면 ‘가슴 속 아우성’은 가라앉고 ‘세사 번뇌’나 ‘사랑의 슬픔’은 사라진다. 그 가운데 ‘극락정토’로 가는 길을 깨칠지도 모른다. 수놓기를 통해 지친 영혼을 치유하고 마음의 평화를 획득하는 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게 그려내면서도 자수의 세계에서 번뇌를 극복하는 과정을 점층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여성적인 섬세함과 강렬한 생명력이 돋보인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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