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1천800조를 돌파했다. 명목GDP 대비 100%에 육박하는 규모일 뿐만 아니라 그 증가 속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점은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한 터다. 그러나 상황을 바르게 진단하는 것과 바른 처방을 내리는 것은 전혀 별개이다.

금융계의 황제 급 인사가 취임도 하기 전에 마음먹고 일갈하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권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아는 듯하다. 먼저 농협이 신규 전세자금 대출과 주택담보 대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우리은행, 제일은행 등 시중은행이 농협의 조치를 따라가고 카카오뱅크도 동참할 듯하다. 주요 은행들의 대출중단 도미노는 결국 다른 금융기관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출 규제 강화는 부동산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 관련 대출인 까닭이다. 부동산 폭등이 유동성과잉에 기인한다고 보고 가계대출을 통제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믹스를 선택한 모양이다. 그러한 판단이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옳은 판단이라고 하기엔 깊이가 없다. 장단도 맞지 않는다. 금융 쪽에서 유동성을 줄이는 정책을 채택하면 재정 쪽에서도 긴축으로 화답해야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삐를 조이는 금융과 주머니를 푸는 재정은 포퓰리즘이 가미된 영혼 없는 정책조합이다.

금융은 과잉유동성을 잡아 물가와 부동산을 잡겠다는 것이고 재정은 돈을 풀어 유효수요를 살리고 투자를 늘려 침체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좁은 시야로 보면 일견 일리가 있다. 허나 큰 틀에서 보면 제팔 제 흔들기 식이다. 부분적으론 상충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전체적으론 상충하는 관계이다. 두 정책의 효과가 상쇄돼 어떤 목적도 기대할 수 없다. 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정책부터 우선하는 것이 맞는다. 판단이 안 선다면 일관성 있게 하나만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재정당국이 돈을 뿌리는 정책을 선뜻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힌 때문일 것이다. 돈을 뿌려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정파적 포퓰리즘의 악취가 풍긴다. 매표성 포퓰리즘으로 정권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가와 부동산을 잡지 못하면 일회성으로 돈을 뿌려도 효과가 없을 뿐더러 그 돈이 독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경제가 파탄 나서 삶이 팍팍해지면 민심이 돌아서는 것은 순간이다.

사실 물가와 부동산을 잡는 정책목표 한 가지도 달성하기 버겁다.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거위의 털을 뽑듯이 시장의 충격이 크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출중단이라는 과격 조치는 서민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다. 돈이 절실한 사람에게 돈줄을 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제도권 금융을 차단하면 살기 위해 사채시장에서 빚을 낸다. 사채가 죽는 길인 줄 뻔히 알지만 정 길이 없으면 그 길로 가는 법이다. 경제 활성화로 소득을 높여줌으로써 대출 필요성을 줄여주고 빚을 줄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상적인 원인 처방이다.

모두가 빚 없이 사는 세상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빚을 못 쓰게 창구를 틀어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부득이 빚을 내야하는 처지에 빠진 사람에겐 돈을 싼 이자로 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대로 두면 가정이 파탄 나고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대출중단이 부채를 막을 순 없다. 제도권 금융을 틀어막아 통계숫자만 낮추는 건 국민을 속이는 짓이다. 이는 아기가 오줌을 싼다고 고추를 싸매는 것과 다름없다. 물을 적게 먹이거나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줌을 가리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금융위원회는 우수 대부업체를 선정해 지원함으로써 금융권 대출 규제를 합리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싼 이자로 빌릴 수 있는 길을 막고 높은 이자로 빌리게끔 유도하는 꼴이다.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서민을 옥죄자는 것인가. 인심 쓰듯 대부업체를 추천하는 모습은 가증스럽다. 그나마 사채를 안 쓰도록 배려한 조치라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서민을 배려한다면 빚을 안 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국민이 괴롭히고 못 살게 하는 존재로 정부를 오해할까 두렵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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