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정도 조절이 중요한 통화정책 정상화

발행일 2021-09-01 14:58:5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가을 이사철을 맞아 무주택자들의 시름이 더 한층 깊어지고 있다.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원하는 곳 또는 그에 준하는 곳으로 주거 이전이 가능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매매든 임대든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무주택자들의 입장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신규 가계대출을 아예 중단하거나, 대출 규모를 축소하려는 시중은행이 증가하는 등 적당한 주거 확보 자금 마련도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향후에 더 가속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6일 단행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금융 불균형이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지난 2년에 걸친 통화완화로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기보다는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면서 자산가격 불안을 야기함과 동시에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은 서울, 경기 등 주요 시장을 중심으로 거래량 축소에도 불구하고 연일 신고가를 찍는 등 불안정성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고, 주택담보대출이 50%(948조 원)를 상회하는 가계부채 규모도 1천800조 원을 훌쩍 넘겨버렸으니 통화정책 당국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미국 연준(Fed)의 연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실시가 거의 확실시됨에 따라 선제적인 통화정책 의사결정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 실시가 곧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신흥국을 중심으로 통화가치, 주가, 채권 가격 등이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친 바 있고 국내 금융시장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등 이른바 긴축발작(taper tantrum) 재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통화정책 방향도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연준에 앞서 선제적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시장 예측보다 일찍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국내 금융 불균형 현상 개선을 위한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암시할 뿐 아니라 전반적인 통화정책 측면에서는 긴축으로의 전환(여전히 완화적이지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이제 남은 문제는 통화정책 당국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긴축을 추진해 나갈 것인가이다.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국내 경기 및 금융시장 여건 등을 고려해봤을 때 이론상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인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시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내년 말까지 1%대 초중반 수준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만큼 경제주체들의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그럴 일은 없겠지만)로 빠르고 강하게 통화정책이 전환될 경우에는 정책실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염려스럽긴 하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말에 있었던 기준금리 인상 당시를 돌이켜 보면 답은 분명하다. 당시, 일각에서는 낮은 금리가 부동산 시장 불안과 가계부채 급증의 원흉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때문에 통화정책 당국에서는 2017년 11월(1.25%에서 1.50%)과 2018년 11월(1.50%에서 1.75%)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1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총 2차례 0.5%포인트를 올렸으니 수준이나 속도가 과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기대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기준금리 인상 후에도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불안했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완화되지 않았다. 반면에 겨우 살아나기 시작한 경기 회복세는 오히려 약화되고, 경제 전반의 비용상승을 초래한 바 있다.

당연히 이런 정책 실기가 반복돼서는 안 될 일이다. 더욱이 아직 코로나19 불확실성이 여전히 커 본격적으로 통화정책 정상화를 서둘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 대내외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거시 경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금융 불균형 개선은 통화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분명하겠지만, 그 속도와 정도의 조절이 중요한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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