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살고 싶은 몸부림이다~

… ‘입양아’, ‘필립 클레이’, ‘14층’, 신문을 펼쳐놓고 줄을 긋는다. 습관이거나 강박일 수 있다. 줄을 긋다보면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 다 긋다보면 의미가 없어진다. 중요했던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줄을 긋다가 그 골목을 떠올렸다. 뱅글뱅글 돌게 되는 골목이었다. 그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고 또 돌았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깨진 벽돌로 된 아치형 대문./ 공원에는 놀이기구와 의자만 덩그러니 있었다. 화단 난간에서 보타이를 맨 줄무늬 고양이가 쳐다봤다. 보타이에 ‘비안나’ 상표가 뚜렷했다. 키우던 개, 자몽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이고 어머니는 만사에 무심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어쩌면 어머니가 더 병적이다. 아버지가 정 붙일 곳은 자몽이 뿐이었다. 허나 자몽이는 이웃에 쫓겨 옥상으로 갔다. 열악한 옥상에 갇혀 미쳐 날뛰었다. 나는 그 목줄을 잘라버렸다. 자몽이는 종적을 감췄다. 그 후 아버지 알코올중독 증세는 더 심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무심함이 싫어 고시텔로 들어갔다. 집을 나오던 날 어머니는 울음을 터트렸다. 미쳐 날뛰던 자몽이 눈빛을 내 눈에서 보았는지 모른다. ‘검은 머리는 거두는 게 아니야.’/ 그는 힘이 빠져있는 듯했지만 졸렬하거나 옹색하진 않았다. 그 콧날을 보고 있으면 자몽이 생각이 났다. 모호한 남자였지만 마음을 주고 말았다. 내가 먼저 접근했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과묵했다. 혼자 온갖 생각을 다했다. 뭔가 인연이 닿는 사람 같다./ 회사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인원감축이 불가피했다. 내가 감축대상인 게 거의 확실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사직서를 냈다. 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근데 나는 그를 찾아가고 있다. 찾아간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렇지만 그를 만나야 할 것 같다./ 골목을 돌아 오르막을 올라갔지만 그의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골목을 헤매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공원에서 고양이 ‘비안나’를 다시 만났다. 헤진 보타이를 매고 화단 근처를 서성였다. 나는 못 본 척 돌아섰다./ 요즘 나는 줄을 긋다 문장부호에 동그라미를 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아버지를 사랑했다. 어머니의 무심함은 인내의 겉모습이었고 어머니가 회피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알코올중독이나 무심함은 과잉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필립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불법체류자가 되어 한국으로 추방된 남자다. 입양, 학대, 파양으로 이어지는 가혹한 삶을 살았다. 그는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렸다. 나는 그 기사에 줄을 그었다. 그는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의 심리를 짐작해본다. 계속 잘 풀리다가 갑자기 맺혀서 무너져 내린 것일까. 아니면, 가혹한 운명 속에서 힘든 삶을 견디다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바람에 그만 연줄을 끊은 것일까. 문제적 가정에 입양돼 비정상적인 부모 아래 자란 애정결핍 여자가 학대받고 파양돼 추방된 미국 입양아 출신 남자를 만나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도 그의 극단적 선택을 지켜본다. 그의 죽음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계기로 작용한다. 기대가 너무 크다 보면 실망한 나머지 때론 자해행위를 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어머니의 무심함을 이해하는 실마리다. 그는 지독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뛰어내렸는지 모른다. 배려와 사랑이 필요하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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