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회는 입법 공장에 비유한다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법안을 찍어내고 있다.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그렇게만 볼 순 없다. 여당이 절대 과반을 차지해 입법독재를 자행해온 증좌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임위를 독점한 여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 과정에서 과잉 입법과 부실 심사, 날치기 통과가 낳은 부끄러운 결과물이다. 기형적 정치구도에 편승한 각종 압력단체의 지대추구행위도 힘을 보탰다. 게다가 선출직의 입법 실적 경쟁이 마침표를 찍은 형국이다.

입법 건수가 의정활동 성적으로 평가되고 이를 근거로 각종 상까지 주고받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표를 의식해야하는 선출직은 입법 건수를 외면하기 힘들다. 질보다 양이다. 숫자 채우기, 생색내기 입법의 유혹을 여야 누구도 과감하게 뿌리치지 못한다. 내용도 모르고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리고 본의 아니게 과잉 졸속 입법에 가담한다. 공동발의자가 그 법안에 반대하는 촌극은 이러한 입법 환경이 나은 웃지 못할 코미디다. 과잉 입법은 자유와 창의를 제한하며 범법자를 양산하는 근원으로 기능하고, 졸속 입법은 부실 심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각종 불만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탄을 받는다.

입법 발의 건수를 올리는 일이 다급한 과제가 되다 보면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 마다 동정적 분위기에 휩쓸려 즉흥적으로 법안을 발의하고 감정에 치우쳐 과잉 대응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그 취지와 의도는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허나 법안은 시간을 갖고 숙성시킬 필요가 있다. 전문가와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수렴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최대한 감안해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 결과 신뢰할 수 있고 생명력이 긴 법안을 만들 수 있다.

어쩌다 극히 예외적인 사람이 일탈하면 전체를 잠재적 범법집단으로 보고 강도 높은 규제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 그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사학재단 교사 채용을 위탁하도록 하는 법이 그 대표적 사례다. 사학의 교사 채용 과정에 금품수수 등 불법이 하나 불거지면 모든 사학에 족쇄를 채운다. 범법행위를 한 사학을 현행법에 따라 엄중 처단할 수 있는데 불구하고, 전 사학을 상대로 강력한 규제책을 만든다. 이는 도를 넘은 입법 전횡이다. 몇 개의 사례로 전체를 단정 짓고 판단한 부당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진영논리에 갇혀 적의를 드러낸 성급한 과잉 반응이다.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제한된 증거를 가지고 바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다. 극소수 의사의 수술실 실책이 모든 의사를 범법자로 만들 순 없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법은 수술실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원할 경우 수술 장면을 촬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례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중환자 수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다면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건 명약관화하다. 의사의 안전 우선이 최선의 노력을 만류할 터다.

부분의 문제점을 확대 해석해 전체를 싸잡아 같이 봐서는 올바른 법안을 만들 수 없다.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언론중재법도 마찬가지다. 한 언론인의 일탈이 있었다 하더라도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감정적 과잉 대응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언론으로 인해 피해를 본 몇몇 사람들이 앞장서서 깃대를 잡고 적대감과 복수심으로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후진 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빼놓을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의 형사책임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어 산업계를 위축시키고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가 매우 높다.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규명해 해결점을 찾는 것이 정석이다. 냄비에 물 끓듯 하는 여론에 휘둘려선 답이 없다. 동정적 분위기가 대세이고 감독기관에 대한 비난이 비등하면 제재부터 대폭 강화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허나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실정에 맞지 않아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냉정을 되찾으면 반드시 후회한다. 대형사고가 터지고 나라가 들썩거리더라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성적으로 검토한 다음 그에 맞는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 맞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론에 길이 있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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