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담긴 말엔 물소리가 납니다//옆구리 깊이 파여 먼 곳을 바라보면//돌아온 파도의 말이 귓전에 쏟아집니다//퉁퉁 부은 발목들이 찾아드는 늦저녁//슬리퍼도 운동화도 물소리에 녹아듭니다//차르르 지워진 발자국, 만 가득 들이칩니다//해초 냄새 덜 밴 기다림을 매만질 때//짠물을 맞아 봤거나 흘려본 사람들은//발돋움 숨어 자라는 조금만의 근육입니다

「시와문화」(2021, 여름호)

정상미 시인은 2021년 등단했다. 등단작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담백하고 정갈한 언어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금만(灣)’은 제목이 특이하다. 시작도 새롭다. 아쉬움이 담긴 말엔 물소리가 납니다, 라는 첫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퍽이나 감각적이다. 이러한 참신한 발상은 신인으로서 어떤 기량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표지다. 그 다음 줄도 예사롭지가 않다. 옆구리 깊이 파여 먼 곳을 바라보면, 이라는 이미지 직조는 명징하다. 눈으로 환히 그려진다. 하여 돌아온 파도의 말이 귓전에 쏟아졌을 것이다. 하루를 열심히 산 사람은 발목이 퉁퉁 붓는다. 그 발목들이 찾아드는 늦저녁에 슬리퍼도 운동화도 물소리에 녹아들기까지 하고 있다. 땀을 쏟아 일한 까닭이다. 다음으로 차르르 지워진 발자국이 만 가득 들이친다는 대목도 예사롭지가 않다. 끝수에서 화자는 해초 냄새 덜 밴 기다림을 매만질 때 짠물을 맞아 봤거나 흘려본 사람들은 발돋움 숨어 자라는 조금만의 근육입니다, 라고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한다. 해초 냄새 덜 밴 기다림을 매만진다는 표현도 주목을 요하고, 짠물에 대한 숙고도 그렇고, 조금만의 근육을 결구에서 인상적으로 장치한 것도 그러하다. 어떻게 하면 시가 되는가와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펼쳐지는 지에 대해 천착과 고뇌를 거듭하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서정의 답습에만 머문다면 독보적인 경지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노래하지 않은 최초의 한 편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길은 시인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다. 즐거운 부담을 안고 끝까지 달려갈 일이다.

그는 또 ‘모래시계 화석’에서 특이한 정황을 육화한다. 학기마다 내 학점은 무늬로만 채워진다, 라면서 재학생과 섞지 못한 발걸음은 무거워져 마침내 쥐라기 화석 백수라고 불린다, 라고 노래한다. 또한 졸업을 미룬 내일은 상처 많은 가루가 되어 책가방 둘러맨 채 모래시계로 들어가는데 그 안의 희미한 가루가 아버지인가 나인가 하고 고뇌 속에서 반문한다. 도서관 유리벽에 주말이 와 갇히고 월세를 재촉하는 문자가 허리를 죌 때 시린 밤 거꾸로 놓고 나는 다시 차오른다, 라고 끝맺는다. 모래시계 화석은 최소한의 학점만 신청하고 일부러 여러 해 졸업을 미루는 학생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 정상미 시인은 이러한 시각으로 오늘의 젊은이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정형의 기율에 충실하면서 시대적 요청에 답하는 창작 방향이다.

그는 또 다른 작품 ‘귤’에서 쉽게 우는 것이란 쉽게 귀를 여는 것, 그만큼 너에게로 가까이 간다는 것이라면서 내 문은 작은 손에도 순하게 열린다, 라고 나직이 읊조린다. 잦은 이사에 지붕이 새고 벽과 벽은 금이 가고 사람들이 담장을 쳐 나를 고이 가둘 때 눈가가 짓무르는 건 작은 방문 열린 거다, 라고 말하고 한때는 문 단단한 오렌지가 부러웠고 가끔은 더 견고한 석류가 그리웠다, 라면서 밤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나를 안은 얇은 상처, 라고 고백한다.

곤비한 영혼을 두드려 깨워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뒤 나를 안은 얇은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서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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