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다중지능

발행일 2021-09-08 14:36:1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며칠 전, 외래에 아주 건강하고 탄탄하게 생긴 청소년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는데 순간 기억이 나지 않아 머뭇거리다 같이 온 어머니를 보니 또렷하게 그 아이의 지난 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뇌전증으로 진료를 받다가 완쾌된 아이다. 이후 4년이 지나 아이는 어엿한 청년처럼 자랐으나 어머니의 모습은 그대로 였다.

뇌전증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어린이에게는 양성 로랜딕 발작이라는 질환이 가장 많은데, 대부분은 약물을 사용하면 쉽게 조절이 되고 거의 완쾌 되는 질병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약물을 정확히 복용하는 데도 불구하고, 경련이 조절되지 않아 아이의 생활 패턴을 확인한 결과 밤에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잘 하고 싶어서 밤에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가를 보는데,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시간에 중계돼 그걸 보느라고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이다.

뇌전증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약을 빠뜨리거나, 수면이 부족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나 피곤함이 있다.

아이에게 손흥민 선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손흥민 선수가 축구 공을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축구공이 올만한 장소에 미리 있는 것 같다고 하니까 아이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 그것이 공간 지능이라고 설명해줬다. 이어지는 질문에 손흥민 선수가 신뢰할 만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다른 선수들이 공을 패스해주겠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게 대인 관계지능(인간 친화지능)이라고 설명했다. 시합이 끝나고 인터뷰 할 때 동료선수 케인을 훌륭한 선수라고 칭찬하고, 자기는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언어지능이라고 설명하면서, 축구를 잘 하기 위해 운동지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할 때에 고개를 끄떡였다.

한 달 후 어머니가 다시 진료실을 찾아와 갑자기 큰 절을 하기에 깜짝 놀라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아이가 완전히 변해 감사하다고 했다. 좋은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밤에 TV를 보는 것도 끊고, 잠도 잘 자고, 스마트폰의 빛 자극도 피하면서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경련이 완벽하게 조절됐고, 학교생활을 너무나 즐기는 아이가 됐다는 것이다. 2년간 경련이 완전히 조절돼 약물을 중단했고, 학교 공부도 잘해 반에서 실장을 맡고, 축구부는 준우승해 축하선물로 독일에서 가져온 예쁜 연필을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

다중지능이론은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에 의해 주장됐다. 인간에게는 최소한 9가지의 지능이 있는데,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지능, 음악지능, 대인관계지능(인간친화지능), 개인내적지능, 자연관찰지능(자연친화지능), 실존지능이 그것이다. 그동안 학교 교육은 언어적 능력 또는 논리 수학적 능력을 중시하면서, 이 두 가지 능력을 기르는데 관심을 두었지만, 이제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있는 지능의 장점을 개발하고, 특히 인성과 관련된 지능을 함께 개발해 주는 게 아주 중요한 시대가 됐다. 단순한 지식은 네이버나 구글을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지만 손흥민 선수에게서 봤던 운동지능 뿐만 아니라 공간지능, 인간 친화지능, 언어지능 등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늘 밝은 얼굴로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손흥민 선수는 영국에서도 아이들에게 다정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볼보이로 나선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거나 볼을 꼬집는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 26일, 페레이라와의 경기 이후의 에피소드가 마음에 잔잔한 즐거움을 줬다. 이날은 토트넘이 3대0으로 페레이라를 완파하며,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날인데, 여러 선수들이 손흥민에게 다가가 유니폼을 교환하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선수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팬들이 있는 펜스로 다가가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에게 티셔츠를 건넸고, 마침 티셔츠를 받은 아이는 경기 당일이 생일이었다. 티셔츠를 건네주며, 직접 ‘해피 버스데이’라고 축하까지 해줬고, 자신의 7번째 생일날, 7번 선수인 손흥민이 직접 유니폼을 건네주는 깜짝 이벤트에 영국의 축구팬들은 열광했다. 아이의 아빠는 손흥민의 유니폼을 입은 아이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내아들 바덴스의 생일을 역대급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와요. 꿈은 현실이 됐고, 당신은 그의 영웅이고 전설입니다. 손,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인공지능시대에 사람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는 것은 따뜻한 인성을 머금은 다중지능이다. 아이들을 지능 하나로 무한 경쟁에 몰아넣어 사회를 피폐하게 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중 지능을 개발하도록 이해하고 품어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닐까?

김준식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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