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힘, 청년예술가 〈12〉 곽이랑 시각예술가||유방암 투병 생활이 작업 세계관 넓

▲ 곽이랑 작가
▲ 곽이랑 작가
‘대구 유일 라탄을 재료로 하는 작가’, ‘작품에 삶을 불어넣는 작가’

곽이랑(32·여) 작가에게 붙는 수식어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곽이랑 청년 예술가는 자연 순환되는 라탄(종려나무로 만든 밧줄), 흙, 돌, 소금 등을 재료로 설치와 미디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작가가 된 이유는 사소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대학 졸업작품 전시가 단 5일 만에 끝나고 텅 빈 전시 공간을 보는 순간 공허해졌다는 것.

곽 작가는 “설치할 때는 정말 고생했는데 치우는 건 정말 금방이었다. 허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복잡했다”며 “하지만 이 복잡한 기분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해 걸어온 길이 벌써 이렇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개인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다. 우연히 개구리를 밟았던 일이나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 남은 한 줌도 채 되지 않던 뼛가루 등이다.

사실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투병 생활에서다.

곽 작가는 2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유방암을 진단받아 치료를 병행했다. 완치된 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해 재발이 되면서 투병을 이어가고 있다.

▲ ‘Live life to the full’, 2019
▲ ‘Live life to the full’, 2019
▲ ‘일상적해프닝(Ordinary Happening)’, 2019
▲ ‘일상적해프닝(Ordinary Happening)’, 2019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삶’, ‘죽음’, ‘순환’이 녹아있다. 실제 지난해 수창청춘맨숀에서 연 ‘실재와 가상 그 경계에서’ 단체전에서는 항암치료를 하고 받은 약 중 남은 약을 직접 갈아 약 가루로 재료로 한 작품을 전시했다.

재료도 자연 친화적이다.

그는 “자연 친화적 내용의 작업을 하는데 자연에 유해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죄책감이 컸다”며 “그래서 나무, 돌, 흙 등 썩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다. 라탄을 재료로 활용하게 된 이유도 같다. 접착제도 소량은 쓰겠지만,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투병 생활을 공개하기가 어렵거나 꺼리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는 “병을 얻기 전 작업을 정말 열심히 해왔고, 고생을 많이 했다”며 “이번 기회에 ‘옳다구나’ 했고, 조금 쉬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이 해준 말 중 ‘하숙집을 내 몸에 비유한다면 암은 하숙생 중 조금 얄미운 하숙생일 뿐이다’라는 말이 정말 와닿았다”며 “비록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풍요로운 거름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위로의식’, 2020
▲ ‘위로의식’, 2020
▲ ‘염’, 2021
▲ ‘염’, 2021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균형 찾기’다. 몸과 건강을 위해 그 어느 중간쯤을 늘 생각하자는 것이다. 병의 공포감에 사로잡혀 막연한 불안감을 쫓지도, 반대로 병에 대한 예민함 없이 몸을 혹사하지 않는 것이 본인과의 약속이다.

일명 ‘라탄 작가(?)’라고 지칭되는 그가 라탄을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균형을 잡기 위해서였다.

지난해부터 우연히 배우기 시작한 라탄 공예로 라탄은 그의 작업에서 주요 소재가 됐고, 이제는 ‘라탄=곽이랑 작가’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것.

그는 올해 ‘라탄’, ‘흙’, ‘돌’ 등을 재료로 한 작품을 북구어울아트센터에서 ‘2021 유망작가 릴레이’ 개인전과 범어길 프로젝트 ‘힙한 아트로드-Re(born)’ 단체전에서 선보여 호응을 받았다.

올해 전시는 모두 끝이 나고, 내년 새로운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라는 그는 라탄을 소재로 한 작품을 더욱 폭넓게 선보일 예정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라탄을 조립 가능할 정도로 크기를 키우거나 생명을 뜻하는 ‘명주실’을 섞는 등 시리즈로 선보인다는 것이다.

▲ ‘200years’, 2021
▲ ‘200years’, 2021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도 그는 되려 최근 3년이 가장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한 시간이란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들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져 작업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서다.

곽이랑 작가는 “현재를 바라보며 생명력이 깃든 숨을 쉬는 작업을 하고 싶다”며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매일매일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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