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물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 (걷는사람, 2021)
바삐 살다 보면 고향 가기가 쉽지 않다. 고향을 찾는 명절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여유를 갖고 뿌리를 찾는 날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 고향 땅을 밟을 것인가. 설날과 추석은 양대 명절이다. 설날은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는 날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일반화된 명절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이 좀 더 차별적일 수 있다. 한 해 수확을 마무리하고 자축하는 날이 드문 예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추석은 오랜 세월 사랑 받으며 개성 있는 명절로 뿌리내려왔다.
추석은 풍요롭고 넉넉한 때다. 그 점도 좋지만 날씨도 그에 못지않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춥지도 덥지도 않다. 등 따시고 배부르며 살기 좋고 놀기 좋은 시절이다. 정겨운 산하를 찾아가서 피붙이들의 얼굴을 보고 그 근황을 살피며 고향까마구들과 추억을 나누다 보면 삶의 고달픔이 날아가고 생활의 활력을 충전할 수 있다. 유년의 추억이 깃든 방에서 밤을 맞으면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인해 날이 새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괜스레 마음이 들떠서 밖으로 나오면 모든 게 정겹고 반갑다. 길 가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아무 말이나 붙여보고 싶다.
외딴집을 지나가다가 따스한 호기심과 착한 궁금증이 발동한다. 귀는 쫑긋, 눈길은 슬쩍. 점잖지 못하게 왜 그랬어? 울타리 너머로 슬쩍 엿보니 누렁이 한 마리가 머리를 숙이고 서 있고 그 옆에 암탉 한 마리가 누워 있다. 머릿수건을 쓴 여인은 무심히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핀다. 웃음이 절로 난다. 누렁이 녀석이 배가 고팠나, 암탉이 누렁이를 똥개라고 놀려 먹었나. 웬만하면 누렁이 편을 들어줄 법도 하지만 애써 외면하는 여인이 서운하다. 막 달걀을 나은 암탉을 물다니! 누렁이를 혼내주라고 사주한 정황이 물씬 풍긴다.
개는 잘못을 알고 뉘우치는 기색이 역력하다. 찔끔 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터다. 남에게 상처 주고 못할 짓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 비하면 개는 그래도 양반이다. 개보다 못한 사람이 넘친다. 개와 닭 그리고 소와 소통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 채송화와 분꽃 그리고 해바라기와 어울려 사는 삶이 부럽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만물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마음이 곧 부처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