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서치(看書癡)’란 말이 있다. 지나치게 책을 읽는 데만 열중하거나, 책만 읽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책만 보는 바보’이거나 지독한 독서광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서광으로는 조선 정조 때의 문인이자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간서치라고 부를 만큼 책을 좋아했던 선비였다. 서얼 출신으로 끼니를 염려할 만큼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박학다식하고 시문에 능해 젊어서부터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덕무가 세상을 뜬 뒤 정조의 지시와 후원으로 출간된 유고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실린 ‘간서치전(看書痴傳)’에서 ‘책만 보는 바보’로 묘사된 인물이 바로 그 자신이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말도 잘 못하고, 성품은 게으른 데다, 세상일도 잘 모른다. 바둑이나 장기도 두지 않는다. 누가 시비를 걸어도 따지지 않고, 칭찬한다고 해서 거들먹거릴 줄도 모른다. 책 보는 일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그의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 (중략) 그의 이런 독서벽(讀書癖)을 두고 사람들은 간서치라고 놀려대도 웃으며 받아들인다. 그의 전기를 써주는 사람이 없기에 붓을 들어 ‘간서치전’을 만들고, 그의 성명은 적지 않는다.’

자타가 인정하는 서양의 간서치로는 남미의 대표적인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있다. 그는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란 말을 남긴 도서관인으로도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보르헤스는 학교교육을 받는 대신에 변호사 겸 심리학자인 아버지의 개인 도서관에서 독서를 통해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등의 문학작품을 폭넓게 접하며 자라면서 재능을 키웠다.

보르헤스는 도서관과도 인연이 깊다. 30대 후반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도서관에 근무하던 중 대통령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40대 후반에 해고됐으나, 50대 중반에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30대부터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시력이 나빠 고통을 겪었는데, 이 시기에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는 이 상황을 “80만 권의 책과 어둠을 동시에 가져다 준 신의 절묘한 아이러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2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다시 ‘독서의 달’ 9월을 맞았다. ‘어깨 펴기, 가슴 펴기, 책도 펴기’란 올해 표어는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시민들이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독서를 통해 위로를 받으면서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뜻을 담은 듯하다. 독서의 달이 제정된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워낙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이란 설(說)도 존재하지만, 독서문화의 일상화를 위한 캠페인이다.

독서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지만, 자녀의 교육적인 측면만 다뤄보고자 한다. 자녀의 인격형성은 물론, 요즘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인 학업성적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그렇지 못하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도서관을 찾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책과 멀어지게 된다. 그 때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청소년기에는 입시공부에 매달리느라 독서와는 담을 쌓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죽하면 부모가 독서 중인 자녀에게 “공부를 해야지 왜 책을 읽느냐”고 닦달을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독서를 하지 않고서는 학업에 발전이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입시전쟁에서 성공한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책을 많이 읽었어요”다. 괜한 말을 한다고 못미더워 하지만, 문장을 읽어내는 독해력 향상에는 독서가 필수다. 또한 책을 읽다보니 궁금증이 생겨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에 몰입하게 되면서 새로운 지식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물론,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탄생하는 것이다. 참고로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세계적인 부호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도 독서광이란 점이다.

논술이란 이름의 글쓰기 능력도 독서를 기반으로 한다. 독서가 지식정보를 입력하는 단계라면, 글쓰기는 갈무리된 내용을 출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입력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재입력하는 환류 절차도 작동된다. 학원 한 번 다니지 않은 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5년 이상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용학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는 대구남산고 1학년 유수혁군은 최근 추리소설집을 펴낸 뒤 또래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교육 현장에서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는 바람에 학습격차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한다. 집안의 여건에 따라 교육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도 독서다. 자녀와 함께 자주 도서관을 찾아 좋은 독서습관을 들여놓기를 권장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독서훈련법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의 달’인 9월 한 달간 독서문화의 확산을 위해 전국의 공공도서관에서 다양한 독서캠페인과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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