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초원 내달리던 유목의 전사들/말갈기 휘날리며 신출귀몰 전쟁 중에/허기를 달랠 때 먹던 말안장 스테이크//천 년의 세월 돌아 여기 디지털 유목민/전사의 허벅지 대신 핏발 선 눈들이/손에 쥔 신호 하나로 사막을 건넌다//서열 매기는 사회 밀려나는 청춘들/시린 꿈 등에 메고 불면을 재촉하며/발 하나 놓을 곳 찾아 몸피를 줄인다//삶의 온도 잃어버린 익명의 세대에게/천군만마 호령하던 함성은 전설일 뿐/

무심한 패스트푸드는, 존엄한 위로다

「홀가분해서 오히려 충분한」(시인동네, 2021)

김제숙 시인은 부산 출생으로 2018년 등단했다. 시조집 ‘홀가분해서 오히려 충분한’과 수필집 ‘여기까지’가 있다. 포항에서 더율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얼마 전 상재한 첫 시조집 ‘홀가분해서 오히려 충분한’에서 그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새로운 발화가 어떠한 것인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이미 그는 잘 알고 있고, 그리해 다채로운 미학적 시도를 보여준다.

장족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그의 작품을 살핀다. ‘햄버거 사회학’은 상상력을 발동해 시공간을 초월해 멀리 몽골초원까지 시각을 넓힌다. 화자에 의하면 몽골초원을 내달리던 유목의 전사들은 말갈기 휘날리며 신출귀몰하는 전쟁 중에도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말안장 스테이크를 먹었다고 한다. 그 당시 몽골의 전사들은 질긴 말고기를 말안장 아래에 넣고 다니며 부드럽게 해서 식량으로 사용한 것이다.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죽느냐 사느냐 다투는 전장에서 매우 기민하고도 실용적인 생존방안이다. 그 다음으로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즉 천 년의 세월 돌아 여기 디지털 유목민은 전사의 허벅지 대신 핏발 선 눈들이 손에 쥔 신호 하나로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증언한다. 천 년 전 그때보다 더 혹독한 상황이다. 그 당시는 전시상황에서도 자연을 호흡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욱 엄중하고 위태롭다. 현실은 서열 매기는 사회여서 밀려나는 청춘들이다. 시린 꿈 등에 메고 불면을 재촉하며 발 하나 놓을 곳 찾아 몸피를 줄이기 위해 애쓴다. 화자는 삶의 온도를 잃어버린 익명의 세대에게 천군만마 호령하던 함성은 전설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나마 무심한 패스트푸드는 존엄한 위로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햄버거 사회학’은 삶의 한 대응방식으로서 시조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밀도 있게 체현한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소중하고, 앞으로의 시업에 기대를 걸게 한다. 그렇기에 시대정신에 충실한 작업을 통해 시대를 견인하며, 미학적 활로를 끊임없이 개척해나가기를 소망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단시조 ‘그 여름의 맨드라미’는 천착과 사유의 깊이가 함유돼 있어 여러 번 곱씹어 읽게 만든다. 맨드라미를 두고 화자는 복면 쓴 자객의 잘 벼린 비수, 미처 꺼내지 못한 몸속의 불씨, 오래전 미리 써뒀던 붉은 묘비명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누구나 뜰에 피어난 붉은 맨드라미 형상을 보면 말 못할 자극을 받게 마련이다. 감각적으로 다소 둔한 사람일지라도 문득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수가 있다. 하물며 남달리 예민한 감각을 가진 시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화자가 은유하고 있는 자객, 몸속의 불씨, 붉은 묘비명이라는 이채로운 상징성은 그만의 것이다. 그가 최초로 부른 영혼의 노래다. 거기에다가 이거나, 를 세 번 각운 처리한 것은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범수가 아니다.

요즘 김제숙 시인의 첫 시조집 ‘홀가분해서 오히려 충분한’을 머리맡에 두고 살피는 일이 적잖은 즐거움이 되고 있다. 삽상한 가을 아침에 그의 건필을 빈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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