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의 마음으로 토종다래를 재배하는 인생이모작 농사꾼||토종다래는 자연이 주는 가장 자

▲ 다래 열매가 익어가는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권용대 대표.
▲ 다래 열매가 익어가는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권용대 대표.
‘살어리랏다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먹자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라성~ (후략).’

고려가요 ‘청산별곡’이다.

‘서경별곡’과 함께 가장 뛰어난 고려가요로 손꼽힌다. 머루와 다래를 먹으면서 청산에 살겠다는 ‘시적 화자’를 고향을 떠난 유랑민, 자연에 은둔한 지식인, 평범한 백성 등 여러 부류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무위자연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평범한 이들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머루와 다래는 자연이 주는 소박한 먹거리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다래는 작지만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어떤 과일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나기 때문에 산중과일의 으뜸으로 꼽힌다.

그러나 맛은 좋지만 맛을 본 사람은 흔하지 않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야만 구할 수 있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이제는 산중에서 자라던 토종다래(이하 다래)를 밭에서 재배하면서 좀 더 쉽게 먹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안동에서 다래를 재배하면서 무위자연과 안분지족의 삶을 누리는 부부가 있다. ‘청하다래농원’의 권용대(63) 대표와 부인 박경희(59)씨 부부가 주인공이다.

부부는 5천㎡의 과수원에서 다래를 재배한다. 인생 이모작으로 시작한 창농(농업창업)의 길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부부의 달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수확한 다래를 보여주고 있는 권용대 대표.
▲ 수확한 다래를 보여주고 있는 권용대 대표.
◆아내는 든든한 후원군

권 대표는 안동에서 3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을 하면서 창농을 했다.

어디서 무엇을 재배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세계문화유산 봉정사를 품고 있는 천등산(576m) 기슭에 터를 잡고, 다래를 선택했다.

평소에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좋았다는 것이 창농의 이유다.

가장 자연적인 작물을 찾다가 다래를 선택했다. 권 대표는 재주도 많고 뚝심도 넘친다.

덩굴식물인 다래 줄기가 타고 올라가는 ‘덕시설(지주선반)’과 관수시설도 직접 설치했다.

경비를 절감하는 의미도 있지만 스스로 설치할 때 느끼는 성취감 때문이다.

소나무를 재배해 농장 주변의 경관을 꾸미는 일도 직접 한다.

그는 사진작가로도 활동한다.

지역의 사진작가들과 함께 여덟 번의 전시회도 열었다. 와인 소믈리에 자격도 보유하고 있다.

영천와인학교에서 3년에 걸쳐 와인 기초과정과 심화과정, 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고 다래와 머루, 포도와인을 만든다.

“농사경험이 없는 제가 농장을 이끌어 가는 데에는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이다”며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한 만큼, 인생 이모작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기 주도적으로 하라는 아내의 격려 덕분에 용기를 냈다”고 권 대표는 말한다.

아내는 인생과 영농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치켜세웠다.

▲ 가지에 달려 있는 다래.
▲ 가지에 달려 있는 다래.
◆다래는 어떤 과일?

재배가 쉽고 자연적인 과일이라는 이유로 재배를 시작했다는 다래는 어떤 과일일까.

다래나무과 낙엽덩굴나무로 깊은 산속 반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암수 딴 그루로 해마다 5월에 흰색의 꽃이 핀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9월에 녹색열매를 따서 먹는다.

껍질이 얇아 껍질째 먹는다. 과중이 10g 정도로 작지만 당도가 18브릭스 정도로 맛이 달다.

항산화성분이 풍부하고 비타민C가 많아 피로회복에 좋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 예방에 효과가 크다.

단단한 상태에서 수확해 말랑해 질 정도로 후숙을 시켜서 먹으면 맛이 더 좋다.

건조해서 먹을 수도 있고 잼이나 주스로도 만든다. 가로로 자르면 색깔과 모양이 키위와 비슷하다.

동의보감에는 열을 내리고 갈증해소와 소화불량에 좋다고 기록돼 있다.

◆나무를 우선하는 농장

예전에는 산에서 자생했으나 근래에 들어 재배되고 있다.

야생성이 강해 병해충의 발생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장수목이어서 50년 이상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한번 심으면 2대에 걸쳐 수확 할 수 있는 나무다. 다비작물(거름을 많이 요구하는 작물)은 아니지만 거름을 많이 넣으면 성장이 빠르고 열매도 많이 달린다.

완전히 자란 나무 한 그루에서 100㎏까지 가능하다고 권 대표는 설명한다.

그러나 다수확 위주로 재배하면 나무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나무의 능력에 맞게 적정량을 수확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다수확을 위해 나무를 혹사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안분지족(분수를 지키고 만족하며 사는 것)을 추구하는 권 대표의 농사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1년에 한번 유기농 유박퇴비와 완전히 부숙시킨 우분을 넣어 지력을 돋운다. 다래는 병해충에 강해 특별히 많은 방제작업을 하지는 않지만 2월경에 석회유황합제를 살포하고 5월 개화기에는 해충 방제약을 1회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1년에 7~8회 정도 풀베기를 한다. 여름철에는 풀베기가 농장일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풀베기에 매달린다.

다래재배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업이다.

▲ 다래를 가로로 자른 모습. 키위와 모습이 흡사하다.
▲ 다래를 가로로 자른 모습. 키위와 모습이 흡사하다.
◆다래농장의 일상

다래농사의 시작은 겨울부터다.

12월과 이듬해 1월에 하는 전정작업이 첫 시작이다.

2월에 들어서면 수액이 이동하기 때문에 전정작업을 할 수 없다.

수액의 이동이 시작된 이후에 가지를 자르면 수액이 흘러나와 나무의 생장에 영향을 준다.

한번 나오기 시작한 수액은 잎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전정을 마치면 바로 퇴비를 넣고 석회유황합제를 뿌려 나무줄기에 붙어 겨울을 난 병해충을 없앤다.

5월에 개화를 하지만 벌과 나비 등 곤충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의 역할은 없다.

꽃이 떨어지고 착과(열매가 열림)가 되면 열매솎기를 통해 수량을 조절한다.

1년생 발육지로 꺾꽂이를 해 다래 묘목도 생산한다.

소득도 올리고 다래 재배면적을 확대해 다래 시장을 확대하려는 권 대표의 시도다.

묘목생산 초창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4년간의 시도 끝에 이제는 90% 이상의 삽목 성공률을 거둔다.

이후에는 계속 풀베기 작업이 주된 일과다.

농약을 최소화하고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흙속에 지렁이와 땅강아지 같은 수많은 벌레가 살고 비가 오면 이름도 모르는 버섯도 무수히 자란다.

지렁이를 잡아먹기 위해 두더지들이 몰려들어 굴을 뚫고 땅을 헤집어 놓는다.

천근성인 다래나무의 특성상 두더지 굴로 인해 어린 나무의 뿌리가 일부 피해를 입지만 개의치 않는다.

땅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면서 그저 발로 꾹꾹 밟는 것으로 마무리한단다. 9월에 수확을 하면 1년 다래 농사는 끝난다.

▲ 권용대 대표가 선별작업 중인 다래를 한 움큼 들어 보여주고 있다.
▲ 권용대 대표가 선별작업 중인 다래를 한 움큼 들어 보여주고 있다.
◆농장은 꽃동산

‘부창부수’가 권 대표 부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부부는 닮았다. 꽃과 나무를 좋아한다는 점이 닮았다.

아내의 꽃 사랑은 유별나다. “꽃은 땅이 웃는 것”이라며 “활짝 웃는 꽃을 보면 마음도 밝아지고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꽃을 가꾼다”고 박경희씨는 말 한다.

아무리 힘든 농사일을 해도 꽃을 보면 피로감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농장 주변에는 수많은 꽃이 사계절 피어난다.

이른 봄 수선화를 시작으로 꽃양귀비와 루드베키아, 패랭이, 해바라기 등 50여 종에 이른다. 친정 아버지가 키우다가 물려준 ‘백동백’화분은 가장 애지중지하는 꽃이다.

여름이면 마당으로, 겨울에는 거실로 들여놓고 정성을 다해 키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인근에 있는 밭에 100여 그루의 소나무를 키운다.

농장 주변의 주경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농장 진입로와 주변에 매년 봄철이 되면 소나무와 화이트핑크 등 갖가지 나무들을 계속 심는다.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어 공원처럼 꾸미고, 고객들과 공유하는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이대로…

권 대표는 고객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의 선물’을 드리는 것이 가장 큰 꿈이라고 한다.

자연 상태와 가장 비슷한 환경에서 다래를 재배해 신선한 자연의 맛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수확보다는 자연 상태와 유사한 환경에서 재배를 하고, 자연의 맛을 품은 다래를 생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다래의 참맛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농장의 규모를 확대할 생각도 없단다. 부부의 노동력으로 감당 할 수 있는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그 동안 축적한 다래재배기술을 이웃농가와 공유해 다래의 저변 확대에도 동참하겠다는 생각이다. 또 다래를 이용해 와인과 식초 등을 만드는 가공품을 개발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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