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로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움, 단풍

발행일 2021-09-30 15:24: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광석 기상청장

박광석 기상청장
“단풍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면 행복합니다.

별을 닮은 단풍잎들이

황홀한 웃음에 취해

나의 남은 세월 모두가

사랑으로 물드는 기쁨이여”

이해인 시인의 ‘단풍나무 아래서’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단풍은 늦가을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중 하나다. 누구나 한 번쯤 가을이 연출하는 천혜의 절경을 보며 깊은 울림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단풍은 가을 특유의 정취를 선사하며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곤 한다. 올해도 한 폭의 수채화같은 계절이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았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뭇잎은 저마다 새 옷을 입는다. 낮아지는 기온에 엽록소 생산이 중단되면서 빨갛게, 때론 노랗게 물드는 것이다. 초록색소인 엽록소의 파괴는 나뭇잎의 푸른빛을 앗아간다. 이는 기온이 낮을수록, 그리고 고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진행된다. 그래서 단풍은 보통 북쪽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물들어가고, 산마루에서 계곡 쪽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일교차가 클수록 단풍은 더욱 짙은 빛깔을 띠며 화려해진다. 반면 나무의 입장에서 이는 ‘비움’의 과정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최소한만 남기고 모두 버리는 것이다. 여름의 푸르름과 무성했던 잎사귀는 끝없이 낙하한다. 파괴가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혹시 여러분은 단풍도 기상관측의 한 종류임을 알고 있는가? 정확히는 ‘계절관측’에 속한다. 단풍이 드는 정도로 계절의 변화 추이, 즉 그 빠르고 늦음을 판단하는 것이다.

먼저 각 지역의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를 대표할 ‘표준목’을 관측소 지점별로 지정해야 한다. 표준목을 기준으로 나뭇잎이 약 20% 물든 때를 ‘시작일’, 80%까지 물들면 ‘절정일’로 정의한다. 현재 전국 24곳의 관측소에서 매년 관측 중이다.

또 설악산, 한라산 등 유명산 21개소의 ‘단풍일’도 관측하는데,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까지 단풍이 든 비율에 따라 시작과 절정이 정해진다. 주로 9월 말부터 점차 시작해 11월 초까지 절정을 이룬다. 작년의 경우, 대구 팔공산은 10월15일 단풍이 들기 시작해 10월27일 절정을 이루었다.

기상청에서는 단풍뿐 아니라 국내 주요 산에 대한 산악날씨를 제공하고 있다. 지형이 험하고 고도가 높은 산에서는 평지와는 다른 날씨를 보일 때가 많다. 산 정상과의 기온차, 강수 유무에 따라 등산채비가 달라지므로, 등산 계획 단계에서 반드시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악날씨는 서울·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제주특별자치도와 같이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총 78개 산 정상에 대한 기온, 하늘 상태, 체감온도, 강수량, 바람, 습도 등을 1시간 단위로 상세하게 제공하며 있으며, 기상청 날씨누리 테마날씨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3%가 산이다. 그만큼 산과 더불어 살아왔고,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로까지 등산인구가 확대되고 있다. 분명 산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지만, 준비되지 않은 등산은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만큼 철저한 안전준비는 필수이다. 기상정보는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든든한 안내원이 돼 줄 것이다.

단풍나무 아래에서 사랑으로 물든다고 노래한 시인처럼 이번 가을에는 산악날씨와 함께 울긋불긋 단풍에 눈 호사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박광석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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