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초/ 김성태

발행일 2021-10-04 14:30:4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강변에 핀 기생초/ 돌보는 이 없어도 저홀로 고웁다/ 모여 더욱 아름답다// 큰 키 작은 키 조금씩 떨어져/ 햇볕도 나누고 빗물도 나누며/ 사이좋게 지낸다

「대구펜문학」 (대구펜문학회, 2021)

기생은 술자리나 연회 등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로 흥을 돋우는 여성이다. 술자리든 연회든 참가자들은 근대 이전엔 대개 남성이었다. 따라서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 기생은, 일패, 이패, 삼패로 나눠져 그 품격에 따라 요구되는 자질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매력적인 기예와 예쁜 얼굴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했다. 근대 이후로 오면서 연예인이나 예능인 등 다른 예술 장르로 분화한 때문인지 아니면 대부분 삼패로 하향 평균화한 때문인지, 기생은 술집 작부 수준으로 추락했다.

어쨌든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생은 몸뚱어리 하나를 생업의 수단으로 삼는 직업여성을 일컫게 됐다. 기생은 남성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발적이고 뇌쇄적인 유혹을 연출한다. 그러다 보니 화장을 진하게 하고 강렬한 향수를 사용하며 화려하고 과감한 옷을 입는다. 우아한 멋을 버리고 천박한 화려함을 보여줌으로써 상업적 프로 근성을 감추지 않는다. 빨강, 노랑, 파랑 등 강렬한 원색을 선호하는 터이다.

그런 연유로 기생초라는 이름은 그 꽃이 강렬하고 화려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기생초를 직접 보면 역시나다. 노랑과 빨강의 강렬한 자태로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 그 꽃말도 다정다감한 그대의 마음, 추억 그리고 간절한 기쁨이라니 웃음이 절로 난다. 무심한 인간의 편견에서 기생초라 이름 짓고 값싼 웃음을 흘리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시각에서 아름다운 꽃에다 잘못 씌워 둔 차별적 멍에를 이젠 걷어내야 할 것 같다.

기생이란 말이 붙은 다른 꽃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기생꽃은 기생초와 완전히 다른 꽃이다. 화려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붙은 오명이다. 황진이가 울고 갈 만큼 꽃이 아름답다거나 꽃모양이 기생의 머리 위에 얹는 화관과 비슷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속설이 민망하다. 그 상상력이 너무 얄팍하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 이유야 어찌됐건 인간의 추한 모습을 꽃에 투영시킨 발상이 밉다.

그렇거나 말거나 꿋꿋하고,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즐겁다. 돌봐주지 않아도 홀로 예쁜 꽃을 피우고 시기나 질투도 없이 함께 어울려 피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잘난 것은 잘난 대로 못난 것은 못난 대로 조화롭고 씩씩하다. 가깝지만 거리두기를 실시하는 지혜가 놀랍다. 햇볕도 나누고 빗물도 나누며 상생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시현한다.

야생화는 그 생긴 대로 삶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주어진 소명을 다한다. 자연 속에서 독립적으로 꾸밈없이 살아가고 삿된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 비바람에 꺾이지 않지만 혼자 살겠다고 이웃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역경을 홀로 극복한 이유로 대자연의 선물을 혼자 독차지 하지 않는다. 어려움은 독력으로 이겨내고 즐거움은 함께 나누는 미덕이 교훈으로 다가온다.

외모의 차이로 차별하지 않고 이득을 차지하겠다고 서로 다투지 않으며 소중한 것일수록 함께 나눈다. 그런 기생초의 심성이 마음에 와 닿는다. 홀로 곱고, 함께 모여 서로 나누니, 어찌 미쁘지 않으리. 화려하게 핀 기생초가 춤추는 가을의 언저리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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