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소리를 읽다/백윤석

발행일 2021-10-12 09:42:0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 ㅑ

꿈도 꾸지 않았지요, 지은 죄 너무 많아/하늘 오르는 사다리는 온전히 당신의 몫/잘 여문 보름달로 떠/가시는 길 비추리다

# ㅕ

한 번 더 기회 주마, 보내 주신 동아줄을/마음이야 단걸음에 타오르고 싶지만은/지긋이 밀쳐 둡니다/내 안에 죄 도질까 봐

# ㅛ

가다 만난 첩첩 산이 다랑이논 되기까지/이내 안 모든 굴레 벗겨내는 그날까지/

묵정밭 고이 가꾸며/벌 달게 받으오리

# ㅠ

말문 닫은 고인돌이 답답한 듯 지켜보다/당신과 나 틈새 메워 다리 되어 눕습니다/이제는 그만하면 됐다/등도 냅다 떠밉니다

백윤석 시인은 1961년 서울 출생으로 2016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스팸메일’이 있다.

‘홀소리를 읽다’는 예사로운 작품이 아니다. 착상과 발화가 참신하다. 물론 우리 시조문단에 낱말과 한글 자모 탐구에 일가를 이룬 문무학 시인이 있지만, 백윤석 시인은 또 다른 관점에서 창의적인 의미구성에 공력을 쏟는다. 홀소리 ‘ㅑ’는 꿈도 꾸지 않았지요, 지은 죄 너무 많아, 라면서 하늘 오르는 사다리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라고 텍스트를 해석한다. 외형을 통해 사다리를 연상한 것이 이채롭다. 하여 잘 여문 보름달로 떠서 가시는 길 비추겠다니 그 배웅이 얼마나 정겨운 일인가? ‘ㅕ’는 또 한 번 더 기회 주마, 보내 주신 동아줄을, 이라고 동아줄 이미지를 연출한다. 마음이야 단걸음에 타오르고 싶지만은 지긋이 밀쳐 둔다고 노래한다. 즉 내 안에 죄가 도질까 봐 그런 것이다. 다음으로 ‘ㅛ’는 가다 만난 첩첩 산이 다랑이논 되기까지 이내 안 모든 굴레 벗겨내는 그날까지 묵정밭 고이 가꾸며 벌을 달게 받겠다고 고백한다. 다랑이논과 묵정밭을 거론하면서 삶의 문제와 직결시킴으로써 의미의 진폭을 확장하고 있다. 끝으로 ‘ㅠ’는 말문 닫은 고인돌이 답답한 듯 지켜보다 당신과 나 틈새 메워 다리 되어 눕는다고 읊조린다. 별안간 고인돌을 떠올린 점이 인상적이다. 이제는 그만하면 됐다, 라면서 등도 냅다 떠미는 장면까지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개성적인 형상능력을 발휘하면서 당신과 나의 인생 문제를 육화하는 과정이 신뢰를 준다. 시인으로서 독보적인 한 음역을 일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는 또 ‘음표를 읽다’에서 높은음자리표와 온음표 8분 음표를 대상으로 삼아 사유를 풀어가고 있다. 어머니 꼬인 심사 대청마루 널려있다, 면서 스란치마 치켜들고 문턱 고이 넘을 적에 아차차! 돌담을 넘어 나를 찾는 목소리, 라고 높은음자리표를 읽어낸다. 분위기에 취한 봄밤, 헤살 놓는 시간 쪼개 깜냥껏 함께 부른 젊은 날의 세레나데여서 그냥은 돌아설 수 없어 돌연 훔친 그녀 입술이라고 온음표를, 잔설 아직 꿀잠 자는 양지 녘 된비알에 외쪽의 잎새로도 피어 내는 꽃대 하나가 무저갱 그 어둠 뚫고 왈칵 문득 봄이다, 라고 8분 음표를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시조는 자아와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보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백윤석 시인은 만만찮은 내공을 가졌다. 오랜 세월 절차탁마와 천착에 힘썼기에 그러한 기량을 갖추게 됐을 것이다. 스케일이 큰 신인이 드문 시조문단에 분명히 새로운 목소리이자 기대주라는 생각이 여실히 든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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