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인간」 (미래사, 1991)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직장에 나간다. 원시인이 사냥 나가 듯 매일 출근하고 일을 한다. 그나마 점심시간엔 잠시 족쇄가 풀린다. 이성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본능과 감성을 외면할 순 없다. 죽도록 일 하기 싫을 때가 가끔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관능적인 여성이 허벅지를 드러내고 가고 있다. 뒷일은 제쳐두고 따라 붙인다. 어떻게 하자는 구체적 계획은 없다. 볼륨 좋은 허벅지에 끌리고 탱글탱글한 엉덩이에 홀려서 무작정 따라 갈 뿐이다. 세상만사 다 잊고 오직 본능에 충실하고 싶다.
욕망의 충동질도 현실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관능적인 여성이 사는 곳은 뭔가 다를 것 같지만 공동묘지 같은 어두운 아파트다. 엉덩이를 흔들며 유혹하던 여성이 불안을 느낀 듯 돌아보는 모습을 보곤 환상에서 깨어난다. 밝은 대낮에 달콤한 꿈길을 따라갔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온다. 옆집 여자에게 치한으로 몰려 망신당한 일이 부끄럽고 당혹스럽다. 어떻게 수습해야 되나. 멀건 대낮에 헛짓한 터. 공연히 자리를 비운 탓에 상사에게 싫은 소리만 듣게 생겼다. 그래도 숨통은 뚫린다.
인간은 꽉 짜인 틀 속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때때로 느낀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상을 일탈하고 싶은 유혹은 자연스럽고 또 그게 인간적이다. 그래서 폭발적인 일탈이 찾아오기 전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줄 파격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옭죄고 무리하게 억압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성욕을 억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길가는 낯선 여인의 늘씬한 다리를 따라갈 정도라면 지나친 금욕이 원인일 수 있다.
인간은 감성적인 동시에 이성적인 존재다. 감성만 따라가서는 존엄과 품격을 지키기 힘들고 이성만으로 살아가다간 사랑과 행복을 놓치기 십상이다. 감성과 이성의 조화로운 상태가 인간적이고 또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중용의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반드시 만족스런 성과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마치 외줄을 타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인생이 매력적인지도 모르지만.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