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단죄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본다. 역사를 이야기할 경우 정부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만 허용될 것이다. 역사학자도 정부가 인정한 사실에 대해서만 연구하고 토론해야 한다. 정사를 확정하는 작업은 누가 하며 그 일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지도 따져봐야 할 법하다. 소설가는 더 걱정이다. 특히 역사소설 창작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소설은 픽션인 까닭에 시각에 따라 왜곡이라고 시비를 걸 수 있다. 역사에 대해 함구하는 것이 대세가 될 듯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역사를 언급했다간 처벌받기 십상이다.
역사 선생도 처신하기 힘들다. 개인 의견을 잘못 개진했다가 역사왜곡으로 끌려갈 생각을 하면 누구도 섣불리 역사를 강의하지 못한다. 그냥 준비된 영상을 보여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안전하다. 정부가 인정한 책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단 하나의 국정 역사교과서로 통일될 수밖에 없다. 논의가 불가한 상태에서 역사교과서를 제작해야 하는 조건에선 역사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말하자면 역사가 역사왜곡 단죄법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역사소설이 불가하다면 역사영화나 사극과 같은 역사물도 설 자리가 없다. 그 뿐일까. 기존의 역사서와 역사를 다룬 저작물들은 졸지에 불온서적 딱지가 붙을 것이다. 역사왜곡을 막으려 들면 왜곡 가능한 모든 도서들을 불태워 없애야 할 터다. 그런 책은 시골집에서 군불 때는 아궁이로 들어갈 것이다. 현대판 분서갱유다. 역사를 거론하기 위태로운 상황에서 누가 역사 이야기를 입 밖에 낼까.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 역사를 잊은 희한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의 말 그대로 나라의 미래는 사라질 것이다. 역사왜곡 단죄법은 그 대가로 나라의 미래를 가져간다.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초는 사상의 다원성과 사고의 다양성이다. 역사왜곡 단죄법은 이러한 다원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원성과 다양성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먹고산다. 역사왜곡 단죄법은 사상, 학문, 표현, 언론 등의 자유권을 억압함으로써 다원성과 다양성을 아사시키는 법이다. 이는 역사를 국가가 재단하자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버리고 전체주의로 가자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적으로 악용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도 바뀔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극렬히 반대하던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더한 전체주의적인 악법을 만들려고 한다면 이는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역사왜곡 단죄법은 하나의 국정 역사를 강제해 하나의 국정 역사교과서만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그와 다른 주장이나 토론을 원천봉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왜곡 단죄법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최악의 경우 역사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이의가 없다. 바른 역사를 국민에게 가르칠 양이면 교육을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는 편이 순리다. 역사에 관한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고, 역사를 정치적 논쟁으로 끌고 가는 소위 ‘역사왜곡 단죄법’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위헌이다. 역사는 자유롭게 놔두면 제자리를 찾아가는 법이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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