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지나칠 법한 재개발 동네에서의 가구와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 조명

▲ 허찬미 작가
▲ 허찬미 작가
▲ 허찬미 작가가 지난 2일 우손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허찬미 작가가 지난 2일 우손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너무도 취약하고 미세해서 이를 다른 장소에 옮겨놓았을 때 객관성은 얻더라도, 개연성은 얻지 못하는 것을 포착합니다. 그 장소 그대로를 담지만 관종적 자세를 취하죠.”

허찬미(30) 작가가 지난 2일 우손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오프닝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부산 출신의 허찬미 작가는 대구와 연고가 깊다. 지난 10년동안 우손갤러리가 소개해온 아티스트 중 최연소 작가로 활동했고,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등으로 활동해서다.

그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칠 법한 재개발되는 동네에서의 가구와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를 조명한다.

보도블록 틈 사이에 나는 풀이나 공사장 철근 위에 앉은 까치, 콘크리트 도로의 맨홀 뚜껑 등이 그 대상이다. 도시 생활에서 작고 진부해 중요치 않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머물지 못하는 소외된 사물을 포착한다.

허 작가는 “소설에 나온 배경을 거닐다 발견한 것들로 부산 중앙동 아파트 옥상, 타워 등의 모습들”이라며 “목격한 풍경들은 묵묵히 자기 자리에 있으며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 가운데 내가 읽은 그대로를 담는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객관성과 주관성이 함께 녹아있다. 보이는 에너지를 온전하고 정직하게 담아냈지만, 허 작가의 주관적인 시선이 녹아있어서다. 장소 안에 있는 생명체의 흔적들에 대한 작가의 1인칭 시점이자 관종적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는 “인위적이든 자연이든 주목받지 않으면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모습들이 그리고 싶고,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는 어린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다.

그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일을 통해 동기부여가 됐다”며 “어느 공간을 가야하고, 나의 공간이 아닌 것들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서다”고 말했다.

특히 그 사물들은 ‘블러’ 효과로 인해 대상의 주목도가 높아진다. 마치 비가 내리는 날 창밖을 보거나 안개가 자욱한 곳에서 대상을 보는 듯한 흐릿한 느낌을 풍긴다.

채색 방식에도 잘 드러난다. 실제와 거의 흡사한 색인 파스텔 톤과 회색 톤은 버려지고, 잊혀지고, 소외된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의 정적이고 고요함을 더한다.

배경에는 붓이 도구가 되지만, 대상을 그리는 데는 그 장소에 있던 풀, 나뭇가지 등이 활용된다.

또 하나의 주목할 점은 그가 강조하고 싶은 대상을 한 번 더 그려 캔버스를 중첩해 전시한다는 것이다.

왠지 모를 쓸쓸함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동떨어져 나와 겹쳐 입기를 통해 대상을 부각하고 확대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허 작가에게 모든 장소는 대상이 돼 ‘무엇을 그리는가’에 대한 고민은 없지만, ‘이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은 항상 숙제로 남아있다. 허찬미 개인전은 내년 2월4일까지 우손갤러리에서 열린다.

우손갤러리 이은미 큐레이터는 “그의 회화 속에는 마치 꿈속의 정지된 장면처럼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미세한 사건들의 움직임이 섬세하게 시사돼있다”며 “그가 작품을 통해 동시대를 바라보고 대처하는 자세는 어떤 거장에게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진지함과 진실함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 매일산책연습 지붕바다
▲ 매일산책연습 지붕바다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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