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사람이 있다

발행일 2022-01-27 09:36:2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천영애 시인

작년 겨울부터 마을과 면내에 여기저기 현수막이 나붙었고, 젊은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시의 쓰레기 소각장이 이쪽에 있는데 그 시설을 증설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사반대하는 면의 젊은이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었고 안일하게 대처하던 시에서는 뒤늦게 설득 작업에 나섰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귀촌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구경만 하는 입장이지만 쓰레기 소각장을 볼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시에서도 경치가 좋고 개발이 되지 않은 유일한 지역에 소각장을 설치한 것은 일단 인구가 적어 반대하는 행위가 벌어진다 해도 그리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지역 출신 시 의원 한 명 마땅하게 있지 않은 형편에 정치인 누구 한 명 이 지역 편을 들어 주는 사람도 없으니 설치는 다른 지역보다 쉬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증설 작업까지 하겠다니 좋은 환경을 찾아 귀농귀촌하거나 정착하고 살던 젊은이들이 가만 있을리 없는 것이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을 찾아 귀촌할 곳을 찾아보니 막상 쉽지 않았다. 우선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널려 있는 축산농가가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그 축산농가는 농가 입장에서 보면 생존의 방법이니 뭐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들판 여기저기에 무분별하게 지어져 있는 공장이나 창고들이 미관상 좋지 않아 보였지만 그 역시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소각장과 매립장이 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나 그것 역시 어느 지역엔가는 반드시 설치돼야 하는 시설이라는 면에서 무조건 반대만 해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저 환경오염없이 관리를 철저하게 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쓰레기 처리 시설들은 당연한 수순처럼 증설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어느 지역엔가는 반드시 설치돼야 하는 그 시설이 왜 하필이면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에 있는 것이며, 그 설치에 대한 대가는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환경에 완전히 무해한 것이면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시 주변에 설치해도 괜찮지 않은가. 자기들이 버린 쓰레기는 자기들이 처리한다는 원칙을 세우면 간단한 일이다. 왜 굳이 인구가 적고 경치가 수려한 곳에 그 시설을 두려 하는지 시의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설득력만 없을 뿐이다. 이런 시설의 설치나 증설 작업은 개발이 안된 곳의 개발을 더 더디게 할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의 갈등을 부추길 소지가 있어 더 문제다.

정말 환경에 무해한가? 그렇다면 가장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시 지역에 그런 시설을 설치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혐오 시설들을 시 외곽 지역에 설치하고 있었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가장 적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지역의 사람들이 그런 시설을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나는 지역 사람들의 소각장 증설 반대 운동에 동의한다. 별다른 대책과 보상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증설을 시도하는 시의 정책이 도시에서 살다 온 내가 보기엔 의아할 뿐이다.

만약 도시에 그런 시설을 만든다면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돼야 할 것이다. 그 주변 지역민에 대한 보상만도 엄청날 것이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시설을 감시하는 바람에 공무원들은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시골은 도시에 비해서 모든 것이 상당히 느슨하다. 우선 산 안으로 시설을 짓는 탓에 시각적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그 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민을 호구로 보지 말라는 현수막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시골은 정적인 것 같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역동적인 지역이다. 도시인들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부지런하게 살아낸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들판의 어딘가에서 이 겨울에도 부지런히 그들의 일을 하고 있다. 단지 집들이 도시와 다르게 띄엄띄엄 떨어져 있을 뿐이고, 인구밀도가 낮으니 한가로워 보일 뿐이다.

혐오시설들을 시골이나 도시에서 소외된 변두리에 짓는 그 당연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천영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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