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지역사회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 중인 공공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이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가 단위 도서관 정책을 담당하는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위상이 격하되고, 시민 중심의 도서관 서비스가 위축될 우려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조짐이다. 가까스로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주민들이 소통하면서 지역공동체가 복원되고, 지식정보가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되면서 지역주민들의 시민역량이 강화되는 등 공공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이 확대되는 가운데 갑자기 제동이 걸린 셈이다.

윤석열 정부 및 지자체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대두된 공공기관 혁신과 공조직 슬림화란 방침 아래 진행되는 이같은 움직임은 획일적으로 진행되는 분위기다. 국민의 혈세로 방만하게 운영되는 공공기관과 공조직의 군살을 빼는 것은 당연하고 환영할 만한 조치다. 하지만 국민과 격변의 시대에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반시설인 공공도서관을 ‘군살’로 취급하는 시각은 수정돼야 한다. 군살 제거에도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의 중요성은 모든 계층의 국민과 시민을 서비스 대상으로 삼아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 정책이 시행된 1963년까지 태어난 74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공공도서관의 존재 가치가 본격적으로 높아졌다. 은퇴 이후 마땅한 활동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복합문화공간인 공공도서관에서 지식정보를 소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재능나눔을 통해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역할도 자처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활동을 하는 유력한 여론주도층이자, 유권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은 정부 소속 위원회를 줄인다는 방침에 따라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위상을 낮추려고 시도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달 초 대통령 소속 위원회를 최대 70%까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당시 22개였으나, 일자리위원회와 정책기획위원회가 새 정부 들어 없어지면서 현재 20개다. 대통령실이 분류작업 중인 통폐합 대상에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도서관협회는 며칠 전 30여 개 도서관계 및 문헌정보학계 단체와 함께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대통령 소속 존치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연대성명서를 발표했다.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2007년 여러 부처에 산재한 도서관 정책의 범국가적 조정과 협의를 위해 설치됐다. 그동안 도서관발전종합계획 수립과 도서관 인프라 확충, 후진적 제도 및 시스템 정비, 취약계층 정보격차 해소 등 특정 부처나 시도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책적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폐지 또는 위상 격하가 거론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구시도 조직개편 과정에서 공조직의 슬림화를 위해 2023년 개관 예정인 국채보상공원기념도서관의 운영을 원점으로 돌려 대구시교육청에 위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채보상공원기념도서관은 기존에 대구시교육청이 위탁 운영하던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해 재개관하면서 대구시가 직접 운영하기로 한 공공도서관이다. 초·중등학교 재학생들을 서비스 대상으로 삼는 교육청에 맡겨서 운영하는 것보다 지자체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도서관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던 방침에서 후퇴한 셈이다.

시민들에게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도서관인 대구시립도서관은 모두 아홉 곳이다. 이 가운데 대구시 소유는 여섯 곳, 대구시교육청 소유는 세 곳이다. 대구시는 대구시교육청에 시립도서관 운영을 맡기면서 위탁비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구시의 채무를 줄이기 위한 재정혁신 방안에 따라 공공도서관 위탁비가 10% 줄어들 전망이어서 대구시교육청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를 두고 대구시가 공공도서관을 직영할 경우 효율적인 인력 운영으로 대구시교육청에 건네는 위탁비보다 적은 예산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혈세 낭비를 줄이기 위해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적용하면서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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