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얼 담은 심산매화공원을 기대하며

이 상 섭

객원논설위원

전 경북도립대교수

‘정년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생각난다. 중국 전한시대에 절세미녀 왕소군(王昭君)이 화친정책 때문에 흉노 왕에게 시집가야 하는 처지를 읊은 시의 글귀다.

계절은 봄인데도 왠지 답답함은 비단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방을 들러 봐도 빤한 데가 한 곳도 없다. 경제는 섣부른 정책실패 탓으로 불황의 늪에 빠진 지 오래고, 한미동맹의 균열에 이어 목을 매던 대북관계는 ‘닭 쫓던 개 먼 산 쳐다보듯’ 외톨이 신세인 양 가엾어 보인다.

‘인사가 만사’라고 누누이 고(告)했건만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장관 후보자 일곱명의 면면을 보니, 한마디로 유구무언이다. 이쯤 대면 루비콘강을 건넌 것 같다.

그래도 봄이다. 봄의 전령사 매화가 피고 질 때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 곳, 단양의 강선대(降仙臺)다. 조선 최고의 학자 퇴계 이황(1501~1570)과 그의 연인 두향과의 매화로 맺어진 숭고하고도 슬픈 사랑의 무대며, 두향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퇴계는 9개월 만에 찾아온 이별이 아쉬워 두향이 준 매화를 늘 애지중지하였고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겼던 도산서원도 한 곳이다.

두향의 푸른빛 나는 퇴계 매화는 고사(1985년)했지만 도산서원과 제자인 한강 정구의 회연서원(성주), 동시대를 살다간 남명 조식(1501~1572)의 산천재(산청)에는 올해도 매화가 만개했다.

매화는 1500년 전에 중국에서 들어와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중‧일은 모란과 벚꽃에 눌려 이젠 우리가 주류라고 한다. 군자가 꽃 중에 매화를 제일로 침은 꽃보단 인내와 절개, 고결한 기품 같은 상징성 때문이며, 매화에 관한 시조가 무려 4천여 편이나 전해져오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경북 성주에 5만여 평 규모의 세계적인 심산매화공원이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어, 우리매화가 선비문화의 표상으로 세계에 널리 알릴 날이 기다려진다.

더욱이 국내에 현존하는 매화공원은 대개 근린공원의 소규모에 비해,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각종 매화를 총집결시키고, 매화박물관까지 갖춰 명실상부한 매화의 메카로 조성한다기에 더 기대된다.

최초의 천연기념물(105호)이었으나 고사(1945년)한 부여 동(冬)매와 도산서원 두향의 자목(子木)도 일본에서 찾아오고, 중국과 대만의 매화관상목과 백매, 청매, 홍매, 수양매의 야외 식재, 매화 꽃길, 탐방로 조성, 선비의 정원, 매실체험시설 등도 사업에 포함되어 있다.

기대효과로는 심산(김창숙)생가와 청천서당, 동강대와 하강대 등 선비문화의 체험과 체류, 휴양공간의 조성으로 중부권 관광확대 및 지역관광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22일, 매화박물관에 전시할 ‘매화유물 기증식’이 열렸다. 매화에 대한 조예와 매화사랑이 남달랐던 이상희 전 내무부장관께서 평소 수집‧소장해오던 매화 자료 3천500여점을 성주군에 기증하는 행사였다. 9일 전, 대구 두류도서관에 서적 8만 권에 이은 두 번째 기증이다.

이날 기증유물은 본인이 30년 동안 발품 팔고 사비(8억7천만 원 정도)로 사 모은 자료들이며, 수십억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도 군에 기증함에 모두가 놀란 눈치다. 각박한 현세라 더하다.

인사말에서 “만국의 관광객들이 매화공원 호숫가 정자에 마주앉아, 떠있는 달과 호수와 술잔에 비친 달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마지막 희망”이라는 노(老) 장관의 진한 고향사랑이, 한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짠하게 울린다.

그동안 사드로 힘들었던 성주는 이제 하나로 뭉쳤다. 남부내륙철도 성주역(驛)유치와 심산테마파크와 매화공원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새롭게 도약한다는 부푼 꿈이 참외향기처럼 달콤하게 퍼진다. 머지않아 조선 선비의 얼이 깃든 심산매화공원에서 펼치는 세계매화축제가 지역축제의 꽃이 되길 기원해본다. 심산매화공원을 위하여!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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