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어른거리는 무늬라지. 몸 가득 내리쬐는 햇살, 어머니 분홍치마에도 내 아이의 꽃무늬 치마에도 가득히 쏟아지던 햇살, 천 개의 희망이 어른거리고 천 개의 울음이 어른거리던 아가리 캄캄히 벌린 그릇으로 폭우 내리듯 쏟아지던 햇살. 빗살무늬 토기를 그리던 수천 년 전 도공의 머리 위에도 햇살은 아득히 내리쪼였을 테지.// 비틀거렸을 햇살, 휘청거리며 통곡했을 햇살, 가난한 도공의 손이 떨리고 햇살을 그리는 마음에 비가 내렸을 테지, 담을 곡식 하나 없는 마음으로 빚어야 했던 그릇. 어머니 낡은 저고리 위로 쏟아지던 햇살을 담아 지극한 마음이나 담아둘까. 달빛과 바람을 지나 간신히 도공의 손에 닿은 햇살. 햇살을 잡아 그릇에 담는다.// 어머니 분홍치마에 내리면 좋을 햇살, 내 아니 꽃무늬 치마에 닿으면 좋을 햇살.

「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

빗살무늬토기는 빗살 모양의 무늬가 그 바깥표면에 새겨져 있는 토기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편년설정 유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빗살무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왜 그 바깥표면에 새겼는지, 일의적으로 설명하긴 곤란하다. 태양신숭배와 관련지어 햇살을 형상화한 문양이라는 학자도 있고,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기우의 의미로 해석하여 구름이나 비 또는 바람을 나타낸 기하학적 무늬라는 학자도 있다. 토기를 구울 때 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한 용도라든가, 사용할 때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한 ‘논 슬립’ 용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시인은 신석기시대의 토기 표면에 새겨진 빗살무늬를 보면서 하늘에서 내려쬐는 햇살을 연상한다. 수천 년이란 오랜 세월을 뛰어넘은 햇살이 시인의 눈에 차오른다. 신석기시대 도공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햇살이 토기에 체화됐다가 수천 년이 흐른 지금에야 오랫동안 참았던 은밀한 사연을 주절주절 들려주고 있다. 널따란 주둥이로 원시의 건강한 햇살과 풍성한 빗물을 잔뜩 받아먹고서 마침내 튼실한 토기가 완성됐다. 이제 시인은 토기에 숨은 절절한 사연을 하나하나 곱게 풀어내고 있다. 인고의 오랜 세월을 견뎌낸 토기의 빛살은 마침내 한편의 주옥같은 시로 기지개를 켠다.

햇살이 온몸에 내려쪼인다. 어머니의 분홍치마엔 따뜻한 효심이 가득 쌓이고, 아이의 꽃무늬치마엔 도공이 갈무리해 둔 사랑이 흠뻑 쏟아진다. 그 햇살은 천 개의 희망과 천 개의 슬픔을 품고 있다. 거친 삶의 역경에 비틀거리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휘청거렸던 가난한 도공의 숨결이 빛살에 녹아있다. 금지된 만남과 뜻하지 않은 헤어짐을 남몰래 통곡하던 도공의 애절한 마음을 빛살이 파노라마처럼 비춰준다.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도공의 떨리는 두 손을 따스한 햇살이 꼭 잡아주고, 시원한 빗줄기가 눈물로써 그 슬픔을 함께 나누었을 터이다.

토기에 담아둘 곡식은 비록 풍족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 드릴 마음은 넉넉하였고, 연인을 향한 열정은 불처럼 뜨거웠으리라. 도공은 햇살과 달빛, 빗줄기와 바람을 붙잡아 토기에 채워 넣었다. 빛살무늬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따스한 효심이었고, 사모하는 여인을 향한 불타는 사랑이었다, 어머니의 낡은 저고리 위로 잔뜩 쏟아진 햇살이 도공의 지극한 정성을 생생히 증언한다. 달빛이 전하는 은밀한 사랑의 몸부림이 물씬 묻어나고 바람에 실려 온 달콤한 속삭임이 귓가에 은은히 들려온다. 빗살무늬토기는 효심과 사랑을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에 다름 아니다. 수천 년 전 도공과 시인의 소통이 놀랍다. 오철환(문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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