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영 혹은 통녕이라 그래도 통영이다/차지게 아니 불러도 이미 잘 통하는/그 이름 맨 처음부터 통통 튀던 맥박이다//거, 됐나? 묻자마자 하, 됐다! 그러면/긴말 필요 없다, 한마디로 다 된 거다/굼떠서 궁싯거릴 땐 문디 새끼 톡 쏜다//욕되지 않을 욕은 곱씹어 보지 마라/한바탕 걸걸하게 웃고 나면 그만이니/오종종 오랜 섬들도 그리 문대며 살아간다

「좋은 시조」 (2020, 가을호)

이숙경 시인은 전북 익산 출생으로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파두’, ‘흰 비탈’(우리시대 현대시조선 28, 고요아침, 2016) 과 ‘까막딱따구리’ 등이 있다. 그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줄 안다. 늘 그 누구도 좇을 수 없는 시 세계를 열어 보인다. 정신적 수맥을 잘 찾은 까닭이다. 천착의 깊이가 있고, 자아와 세계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 시대의 현실과 내면의 아픔을 육화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쏟고 있다.

‘통영에서 사는 법’은 흥미롭게 읽힌다. 사람들이 흔히 정확하지 않는 발음으로 토영 혹은 통녕이라 그래도 통영이다, 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 통영이 어디로 가겠는가? 화자는 차지게 아니 불러도 이미 잘 통하는 그 이름이 맨 처음부터 통통 튀던 맥박인 것을 감지하고 있다. 부를 때마다 정겹고 사랑스러워서 그런 것이다. 통영 사람들은 거, 됐나 묻자마자 하, 됐다, 라고 즉각 대답을 하니 그러면 정말 긴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 된 것이다. 또한 굼떠서 궁싯거릴 때에는 문디 새끼라고 톡 쏘아준다. 이마저도 지극히 정답다. 그러면서 화자는 욕되지 않을 욕은 곱씹어 보지 마라, 하고 언질을 주면서 한바탕 걸걸하게 웃고 나면 그만이니 오종종 오랜 섬들도 그리 문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상기시킨다. 통영 너른 바다 바로 앞에 작은 우거가 있는 시인이 자주 통영을 왕래하면서 새로운 시 한 편을 건져 올렸다. 높은 파도가 창문을 두드리는 곳에서 시상을 다듬곤 했기 때문이다. 오랜 섬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살아가고 있는 곳은 인심이 후하기 마련이다. 세계적인 미항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통영 바다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곳이다. 저절로 시가 나올 만한 풍광이다. ‘통영에서 사는 법’이라는 시조를 통영 사람들이 다 읽고 외웠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어디 통영 사람뿐이랴. 팍팍한 삶을 견디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읽고 미소 지으며 행복한 시간을 잠시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그는 또 ‘땅끝에서 돌아서다’라는 단시조를 통해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돌아서자 그 끝을 미뤄 두자, 라면서 너무나 보고 싶지만 이정표 등지고 오길 잘했다, 라고 읊조린다. 시작의 끝은 더 살다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미뤄 두는 일의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다. 너무나 보고 싶으면서도 참고 등지고 돌아설 수 있는 유유자적은 쫓기듯 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날마다 보고 듣는 것으로부터 시인은 시심을 얻는다. 바야흐로 천지가 꽃으로 뒤덮일 때가 도래했다. 해마다 피는 꽃일지라도 해마다 그 느낌은 다르기 마련이다. 화가는 붓을 들고 음악가는 노래를 만들고 시인은 감격해서 봄날의 시를 쏟아낼 때다. 봄은 역시 봄이다. 그 누구도 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바이러스가 소멸되고 잃어버린 일상을 꼭 되찾아야 할 것이다. 창밖의 산수유 노란 꽃망울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그지없이 설렌다. ‘통영에서 사는 법’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면서 환하게 퍼지는 햇살을 바라본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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