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이건희 컬렉션’ 중 일부가 대구미술관에 기증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갑갑한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해진 반가운 소식이다. 지역민들의 명작 관람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작품은 이인성(7점), 유영국(5점), 서진달, 문학진, 변종하(이상 각 2점), 김종영, 서동진, 이쾌대(이상 각 1점) 등 8명의 작품 21점이다. 모두 지역출신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대가들이다.

특히 대구를 대표하는 근대 화가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1934), 월북화가로 1988년 해금될 때까지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이쾌대의 ‘항구’(1960) 등이 포함돼 지역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 울진이 고향인 한국 추상화의 거장 유영국의 작품 ‘산’ 등도 포함돼 있다. 그는 아름다운 색채와 대담한 추상 형태로 최고의 조형 감각을 지난 화가로 평가된다. 서진달, 문학진, 변종하, 김종영, 서동진의 작품들도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작품들은 지난 23일 경기도 용인에서 무진동 차량 1대에 실려 대구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이번 기증으로 대구미술관은 지역 출신 작가들의 근현대 작품을 보강해 소장품의 수준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술관 측은 “지역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수집해야 하는데 이번 기증으로 지역 작가 컬렉션을 수준급으로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는 아쉬움도 남는다. 전체 기증 규모가 2만3천여 점에 이르는데 대부분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지역미술관의 보관이나 전시 시설이 미흡한 점도 있겠지만 비수도권 미술관, 박물관 등에 기증된 물량 자체가 너무 적다.

물론 기증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최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사전 협의 과정에서 비수도권 거주 국민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술품 기증에서조차 서울 집중을 버리지 못한다면 지역 균형발전은 요원한 일이 된다. 향후 반드시 개선돼야 할 사안이다.

또 이번 기증이 개인소유 예술품 기증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구·경북 지역에도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을 다량 소장한 애호가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익을 위해 기증할 경우 예술품을 사랑하고 지켜온 그들의 뜻을 기리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일정 수준 보상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보완하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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