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거운 날 홀로 산길 걷는다//벗을 수 없는 배낭은 무게로 다가오고//숨이 찬 고갯마루에서 올라온 길 돌아보네//멀리 바라보면 동화 같은 집과 사람이//왜 가까이에서는 벽이고 상처였을까//뾰족한 심정을 안고 칼바위능선 지나가네//한 발씩 옮겨 디딘 아찔한 낭떠러지가/베이고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 하네//사뿐한 고요 한 채가 이제 산을 내려간다

「화중련」(2020, 상반기호)

조안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2012년 유심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지구에 손그늘’이 있다.

살다보면 몸이 무거운 날도 있고 의외로 날듯이 가벼운 날도 있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산에서 답을 구하다’는 마음이 무거운 날 홀로 산길을 걷는 화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혼자 가는 산행은 호젓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벗을 수 없는 배낭은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산행에서 배낭은 생명의 보루가 될 수 있기에 무거워도 벗지 못한다. 숨이 찬 고갯마루에서 올라온 길을 돌아보면서 과연 무엇 때문에, 무슨 일로 그리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시선은 곧 먼 곳으로 향한다. 멀리 바라보면 동화 같은 집과 사람이어서 정겹기 그지없는데 왜 가까이에서는 벽이고 상처였을까, 라고 의문을 표한다. 아직도 화자는 뾰족한 심정을 안고 칼바위능선을 지나가고 있다. 자칫하면 실족하기 쉬운 험한 길이다. 그때 한 발씩 옮겨 디딘 아찔한 낭떠러지가 베이고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일러주는 것을 귀담아 듣는다. 그 순간 몹시 무거웠던 마음의 무게가 몸속에서 빠져나가버리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뿐한 고요 한 채가 이제 산을 내려간다, 라는 결구가 자연스럽게 나왔을 터다. 어떤 위치 혹은 어떤 마음 상태인가에 따라서 벽과 상처가 물러가고 사랑과 평화의 시간은 찾아오게 될 것이고, 사뿐한 고요 한 채가 돼 산을 가뿐하게 내려갈 것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방안을 산에서 답을 얻은 이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처럼 현명한 판단과 행보는 자신을 유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길이 된다. 산을 찾은 이에게 산이 선물한 답은 맑고 푸른 산바람과 골짜기의 물소리와 같은 청량한 기운이어서 심신이 회복되는 계기가 된다.

그는 또 ‘이사를 하면서’라는 시조에서 무엇을 가져가나 어떻게 버려야 하나 고민하면서 묵직한 옛 주발과 쓸 만한 전자피아노가 이삿짐 추리는 동안 시르죽어 처져 있는 것을 유심히 살핀다. 땡땡이 원피스와 무거운 겨울 외투가 처음부터 한구석에 자리 잡은 건 아니었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한 틈에 되레 슬쩍 활기가 도는 것을 눈여겨본다. 그러면서 다른 인연을 만나서 반짝일 수 있을까, 사는 장소 달라지면 또 다른 세계 열릴까 하고 상상하면서 앞으로 기거할 새 보금자리에서 무엇을 되살려볼까 곰곰이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우리 자신이 자초한 것이 틀림없다.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에 기후 문제와 생태환경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산에서 답을 구하다’는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진다. 산 즉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길만이 바른 사람살이라는 것이다. 각자 욕심을 비우고,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을 마구잡이 훼손하는 착취의 길에서 돌아서야 마땅할 터다.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 오월에 산을 찾아 구름길을 살피다가 그 품에 지친 몸과 마음을 부려놓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루를 지내면서 한 번도 하늘을 우러러본 적이 없이 지낸다면 결코 제대로 된 삶이 아니기에….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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