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그의 소장 미술품 규모가 알려진 초기, 미술계에서는 ‘미술품 물납제’가 큰 이슈였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소장 미술품 가치가 대략 2~3조 원, 시가로는 10조 원 이상에 달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유족들이 이를 국가에 기부할 것인지, 아니면 상속은 하되 그에 따른 막대한 상속세는 미술품으로 낼 것인지가 관심거리가 됐다.

결론적으론 유족들이 4월 말 이 회장 유산의 사회 환원과 상속세 납부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술품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혀, 미술품 물납제는 일단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다.

미술품 물납제란 말 그대로 미술품으로 상속세나 재산세를 납부할 수 있게 한 제도인데, 현재 국내에서는 허용되지 않고 해외 일부 국가에서 이를 시행하고 있다.

현행 국내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상속·증여세가 2천만 원 이상이거나 상속·증여 재산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또는 유가증권일 때 물납이 허용되는데, 그 대상은 부동산과 국채, 주식 등 유가증권으로 한정돼 있다.

2020년 5월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을 타개하고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삼국시대 보물인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과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을 경매에 내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미술품 물납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미술품과 문화재들에 대해 적절한 가치평가를 내리기 곤란한 점과 관리의 어려움 등이 문제가 돼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도 이광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미술품 물납제를 골자로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이고, 정부도 미술계의 건의에 대해 관련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이 필요한 이유로 미술계에서는 해외 유출 가능성을 우선 거론한다. 고가 미술품의 경우 국내에서 판매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주로 해외로 팔려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해외에서는 프랑스가 처음으로 1968년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해 상속세와 증여세, 재산세 등의 물납을 허용하고 있다. 해당 미술품을 5년 이상 보유했거나 상속세가 1만 유로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1973년 파블로 피카소 타계 후 후손들이 상속세를 그의 작품으로 물납했으며, 프랑스 정부는 파리에 피카소 박물관을 열고 그 작품들을 공개했다.

일본과 영국에서도 물납제를 시행하고 있다. 가장 시비가 되는 부분인 미술 작품의 감정평가 논란을 줄이기 위해 일본은 문화청이 외부전문가 자문을 받아 가격을 평가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은 정부에 평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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