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집 근처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은퇴생활을 즐기는 70대 남성 A씨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활동반경이 좁아지기는 했지만,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A씨의 생활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그의 모습을 소개한다.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 사는 대기업 출신 은퇴자 A씨는 매일 오전 9시쯤 집 근처에 있는 용학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자료실의 열람석에 가방을 놓은 뒤 먼저 신문열람대에서 조간신문을 읽은 뒤 디지털자료실로 자리를 옮겨 이메일을 확인한다. 이어 오전 10시가 되면 요일별로 문화강좌실에서 진행되는 시(詩)쓰기 등 독서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오전강좌가 끝나면 함께했던 주민들과 인근 식당을 찾는다. 오후에도 역시 요일별로 진행되는 사람도서관 또는 해설이 있는 영화감상, 음악감상, 미술감상 등을 즐긴다. 또한 틈 날 때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느라 읽지 못했던 책을 찾아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A씨의 저녁시간에도 도서관은 존재한다. 그는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오후 7시에 맞춰 용학도서관을 다시 찾는다. 요일별로 기획된 길 위의 인문학, 독(讀)한 인문학, 저자특강 등 각종 강연이나 지역 인문학자들의 재능나눔으로 진행되는 통청아카데미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진 A씨의 모습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까다로워진 절차를 지키는 정도다. 도서관 입구에서 발열 여부를 확인하고, QR코드로 전자출입명부를 작성한 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이용자 수를 제한하기 위해 마련한 번호표를 목에 건 채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처럼 마음껏 도서관 안팎을 누비지 못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을 때 도서관 문이 닫혔던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A씨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도서관은 은퇴세대가 필요로 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균수명의 연장과 함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행렬은 한국사회의 노령인구 비중을 늘리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3세다. 여성은 86.3세, 남성은 80.3세.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열었던 1970년대 평균수명이 60세 정도였으나, 2008년에 80세를 넘어섰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서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령인구에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만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6%를 초과했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는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의 출생자로, 모두 730만 명 정도로 집계된다. 60세 정년을 기준으로 보면 올해에는 1961년 출생자들이 은퇴세대에 합류한다. 1955년생부터 1960년생까지는 이미 은퇴세대에 포함됐지만, 아직 건강이나 마음가짐에서 은퇴를 인정하기 싫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도서관을 즐겨 찾는 것으로 풀이된다.

요즘 대부분 공공도서관은 베이비부머 은퇴세대의 주된 활동무대가 되고 있다. 사회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공공도서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인문학 강좌와 독서동아리 등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해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사람도서관 참여와 자원봉사 등 재능나눔을 통해 지역공동체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역할에 가치를 두는 공공도서관의 이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은퇴세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부담이 늘어난다는 부정적인 시각만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간직하고 있는 사회적 자산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은퇴세대는 우리나라 경제의 초고속 성장기를 주도한 세대인 만큼 사회적 자산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들의 재능과 경험, 지혜를 은퇴와 함께 땅에 묻어버리면 아깝다는 것이다.

요즘 노인복지기관과 함께 은퇴세대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용학도서관의 경우 지역주민들의 재능나눔으로 진행하는 사람도서관 ‘용학이네 사람책방’을 통해 은퇴세대의 인력풀을 구성하고, 인근 범물노인복지관와 협력해 사회적 일자리를 알선하는 협업체제를 마련하려고 논의 중이다.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은퇴세대가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은퇴세대가 수행하기에 적절한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졌으면 한다. 그러면 지역공동체에서는 사회적 자산을 활용할 수 있고, 은퇴세대 입장에서는 일자리를 통해 보람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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