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연중기획]강소농 현장을 가다<89>칠곡꿀잼농장

발행일 2021-06-16 09: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벌꿀은 신들의 식량, 로열젤리는 신비의 만능식품

여왕벌이 되느냐, 일벌이 되느냐는 로열젤리에 달려

평생 로열젤리만 먹는 여왕벌의 능력은 상상 이상, 300만 개 알을 낳아

여왕벌의 수명과 산란능력은 로열젤리에 좌우

밀원수 심고 고정양봉으로 만드는 숙성꿀 맛보세요



이상열 대표(왼쪽)와 김정현 강소농민간전문위원이 왕유틀에 가득 찬 로열젤리와 왕롱 속에서 자라고 있는 여왕벌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검사를 거친 여왕벌은 양봉농가로 보급한다.


1198년 ‘만적의 난’이 일어났다.

고려 최고 권력자인 최충헌의 사노비였던 ‘만적’이 주동자였다.

천민계층이 주도한 최초의 신분 해방운동으로 꼽힌다.

만적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고 외치면서 세력을 구합했다.

수많은 노비가 동조했다.

동료의 배신으로 실패했지만, 고려사회는 만적의 난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 누구나 ‘개천의 용’이 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신분과 지위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누구나 왕후장상도 될 수 있다는 외침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곤충의 세계에도 신분이 있다. 역할도 다르다.

특히 꿀벌의 세계에서 확연하다.

여왕벌은 종족보존을 위한 산란을 담당한다. 일벌도 외역봉과 내역봉으로 나눈다.

외역봉은 꿀과 꽃가루를 모아온다. 내역봉은 청소와 육아, 로열젤리를 분비한다.

꿀벌도 처음부터 신분과 역할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과정에 신분과 역할이 정해진다. 핵심은 먹이다.

어떤 먹이를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 먹이는 바로 로열젤리다.

부화한 모든 애벌레는 기본적으로 3일간 로열젤리를 먹는다. 이후에 꿀과 화분을 먹으면 일벌과 수벌이 된다.

로열젤리를 계속 먹으면 여왕벌이 된다.

평생 300만여 개의 알을 낳는 여왕벌의 엄청난 산란능력의 근원은 로열젤리다.

여왕벌은 평생 로열젤리만 먹는다. 그래서 로열젤리를 신비의 물질로 부른다.

전국에 2만9천여 곳 농가에서 275만여 군(통)의 꿀벌을 사육한다.

생산액은 4천62억 원이다.

이중에서 67%인 2천740억 원이 벌꿀에 해당한다.

대부분 벌꿀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꿀벌의 공익적 가치는 57조 원에 이른다.

기후변화와 밀원수 부족 등의 양봉환경 변화에 대응해 로열젤리와 종봉 생산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양봉인을 만나본다. 칠곡군에서 ‘칠곡 꿀잼농장’을 운영하는 이상열(48)·김영희(47)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이상열 대표(왼쪽)가 김정현 강소농 민간전문위원으로부터 로열젤리 채취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왕유틀 한 줄에 36개의 왕완이 달려있고,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 왕완에 가득 찬 로열젤리다.


◆운명처럼 다가온 양봉

이 대표는 농촌 출신이었지만 농업과는 무관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용접기술자로 조선소와 대형 건설회사에서 일했다.

손재주가 좋아 기술자로 인정받았다.

용접일은 고임금을 받는 직종이지만 경기에 따라 휴식기가 자주 발생하는 단점도 있었다. 휴식기를 활용해 마당에 벌통 3~4개를 놓고 꿀벌을 키웠다. 취미였다.

꿀벌의 세계는 신기함이었다.

무엇보다도 꿀벌의 부지런함에 마음이 끌렸다.

본격적으로 양봉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양봉이 한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작업 중에 손목에 ‘테니스 엘보’가 생겼다.

지인의 권유로 봉침(벌침)을 맞았다. 반신반의 했으나 효과가 좋았다.

프로폴리스를 복용한 후 평소에 자주 재발하던 천식도 호전됐다.

자연스럽게 꿀벌에 관심이 높아졌다.

2018년 용접작업을 하던 중에 어깨 부상을 입었다. 팔을 어깨 위로는 들어 올리지 못했다. 용접을 계속하기 어려워졌다. 완치도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아픈 어깨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김 대표가 양봉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몇 년간 집안에서 키워본 경험도 있었다.

현재 300군의 꿀벌을 사육하면서 채밀과 로열젤리 채취, 종봉 사육을 병행한다. 채밀보다는 로열젤리와 종봉이 주업종이다.

왕완에 가득 찬 로열젤리와 꿀벌 모습,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 왕완에 가득 찬 로열젤리다.


◆신비한 로열젤리

꿀벌은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고대인들은 벌꿀을 ‘신들의 식량’이라고 했다.

단당류인 포도당과 과당이 주성분으로 흡수가 빠르고 피로회복에 좋다.

로열젤리와 프로폴리스, 화분도 꿀벌이 주는 선물이다.

이중에서 로열젤리는 신비한 물질이다.

부화한지 5~15일 사이의 일벌의 머리에서 분비된다.

유충에게 3일간 로열젤리를 먹이면 일벌이 되지만, 6일을 먹이면 여왕벌이 된다.

여왕벌과 일벌의 차이는 확연하다. 대표적인 것이 수명이다.

일벌의 수명은 2개월 정도지만 여왕벌은 7년이나 된다.

여왕벌은 일생 동안 300만 개의 알을 낳지만 일벌은 산란능력이 없다.

로열젤리의 효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신비의 물질이자 만능식품으로 불리는 로열젤리를 채취하려면 정밀성이 요구된다.

왕완(인공왕대)에 부화 1일령의 유충을 넣고, 벌통 속에 넣어 두면 일벌들이 여왕벌로 생각하고 로열젤리를 먹인다.

72시간 후에 왕완 속에 로열젤리가 가득차면 핀셋으로 유충을 집어내고 로열젤리를 채취한다.

온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채취 즉시 영하 24℃의 냉동고에 보관한다. 채취과정도 복잡하고 까다롭다.

체온의 전달을 방지하기 위해 장갑을 끼고, 통에도 천을 여러 겹으로 감싸고 작업을 한다. 왕완 하나에서 대략 0.7g 정도가 나온다. 50g 전용용기 한 병을 채우려면 70개 이상의 왕안에서 모아야 한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떠오르는 작업이다.

이 대표가 벌꿀보다 로열젤리에 주력하는 이유는 기후변화로 인해 변하는 양봉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종봉과 수정용 벌 사육도 마찬가지다.

왕완에 가득 찬 로열젤리.
◆고품질의 숙성 꿀

이 대표는 숙성꿀을 생산한다.

숙성꿀은 꿀벌들이 꽃에서 채취해온 꿀을 소비(벌집)에 채우고 날갯짓으로 수분을 18% 이하로 만들고, 밀납으로 완전히 막은 꿀이다.

꿀벌들이 꿀을 만드는 과정은 눈물겨울 정도로 힘들다.

일벌은 생후 18~20일이 되면 외부활동을 시작해 꿀과 화분을 모아온다. 한번 나가면 200여 송이 이상의 꽃을 드나들면서 0.04~0.12g의 꿀을 모은다.

하루에 적게는 8회에서 많게는16회까지 외부활동을 한다.

밤에는 임시 저장한 꿀을 다시 먹고 소화효소와 혼합해 다시 저장한다. 날갯짓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농도를 조절한다. 여름에는 날갯짓으로 벌통의 온도를 낮추고, 겨울에는 가슴 근육을 떨어서 온도를 올린다.

벌들의 노력 못지않게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 대표는 고정양봉을 하면서 숙성꿀을 채취하기 때문에 밀원식물(蜜源植物) 조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봄부터 가을까지 연속적으로 꿀이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농장 주변에 공간만 있으면 심는다.

초화류에서부터 나무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개화시기가 한 계절에 편중되지 않도록 안배하는 것이다.

감나무와 헛개나무, 쉬나무, 모감주나무, 바이텍스 등 종류가 수없이 많다.

자연 상태에 있는 아카시아와 떼죽나무, 밤나무 등은 주변의 잡목들을 정리해 성장을 돕는다.

밀원식물 조성은 로열젤리 채취와 종봉 생산에도 도움이 된다. 품질관리에도 철저하다. 꿀과 로열젤리는 탄소동위원소와 항생제, 하이드록시데센산(10-HDA) 검사를 거쳐 판매한다. 품질 제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장수말벌 여왕벌.
◆꿀벌의 천적은 말벌

양봉농가의 큰 고민 중의 하나는 말벌 떼로부터 꿀벌 등을 보호하는 것이다.

장수말벌과 등검은말벌은 외래종이며,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됐다.

말벌 떼의 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양봉장은 초토화된다.

여름철에 매미채를 들고 지키는 것이 일과다.

육식성인 등검은말벌은 하루에 20~30회 양봉장에 날아와 꿀벌을 물어 간다. 꿀벌 유충을 먹이로 삼는 장수말벌은 벌통 안으로 들어가 일벌들을 죽인 후에 어린 유충을 먹어치운다.

열 마리가 침입하면 순식간에 한 통이 몰살된다.

이 대표는 4~5월에 월동을 하고 혼자서 먹이활동을 하는 여왕벌을 잡아서 말벌의 증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작업을 한다.

봄철의 여왕벌 한 마리를 잡으면 여름철 말벌 수백 마리를 잡는 것과 같다. 포도즙과 참나무, 막걸리, 설탕물을 혼합한 유인액을 담은 포획기를 이용한다.

지난 4~5월에 여왕벌 100여 마리를 잡았다.

안동대학교와 협력해 말벌 모니터링 활동도 추진한다. 말벌의 다수 출현시기와 유인액의 효과를 분석해 말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작업이다.

활짝 핀 아카시아꽃.
◆봉산물 체험활동

이 대표는 꿀 생산 일변도에서 벗어나 로열젤리와 종봉, 체험활동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벌꿀의 수입 확대와 기후변화에 따른 양봉환경 변화의 대응전략이다.

체험은 로열젤리와 프로폴리스를 채취하고 비누와 화장품 등 가공품을 만드는 과정이다. 밀랍양초와 립밤도 만든다.

무균실인 벌통 내부의 공기를 흡입하는 벌통 공기체험도 준비 중이다. 이 같은 체험을 통해 농장을 소비자들의 모임의 공간으로 만들고, 꿀벌이 자연 생태계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알린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자원의 3분의1이 사라지고, 인간의 삶도 위협받는다”며 꿀벌과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농장명: 칠곡꿀잼농장

▲대 표: 이상열

▲구입문의: 010-4804-2258

▲소재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로 305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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