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시험 문제 출제는 비슷하다. 작가가 초고 작업을 할 때는 어색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을 미처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어떤 글이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전문 작가들은 초고를 완성하고 일정 기간 글을 잠재운 후 다시 본다. 글이란 볼 때마다 고칠 곳이 나온다. 누구도 완벽한 글을 쓸 수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원고를 보내고 다시 읽으면 또 고칠 곳이 나와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정본을 보내기도 한다. 신문 원고처럼 늘 마감 시간에 쫓기는 글은 초고를 쓴 후 가족에게라도 읽어봐 달라고 부탁한다. 일정 수준의 문장력을 갖춘 사람이 어색하다고 지적하는 부분은 대개 문제가 있다. 그럴 경우 우기지 말고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독자가 오독하거나 오해하지 않도록 고치는 것이 좋다. 시험 문제 출제도 이와 비슷하다. 수능시험, 공무원 시험, 각종 자격시험 등은 수많은 출제진과 검토 요원이 같이 작업한다. 그래도 논란이 되는 문제가 나온다.
전북의 어느 고교에서 기말시험에 사실 확인이 안 된 예시로 문제를 내 논란이 됐다. ‘윤석열 X파일의 장모와 처, 이준석 병역 비리 등의 쟁점을 염두에 두며’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정약용의 ‘목민심서’나 플라톤의 ‘국가’에 근거해 서술하라는 서답형 문제였다. 문제가 되자 출제 교사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출제자 자신도 그 문제가 정치적 중립을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이다. 잘못된 신념을 학생에게 주입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별로 없다. 어떤 명제나 신념도 의문과 회의(懷疑)의 용광로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사나 세계사, 사회 과목은 현실 문제와 관련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고 시험 문제를 낼 때 ‘정치적 중립’ 위배 여부를 거듭 확인해야 한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신이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올 때 제일 먼저 심판대 위에 설 사람은 고위 성직자와 신문 기자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고위 성직자는 인간을 신의 면전으로 데려가는 목자기 때문에 타락하면 가장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한다. 기자가 여론을 오도해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면 신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진리를 가르치며 어린 영혼을 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교사도 심판대 맨 앞쪽에 설 것이다. 그 교사가 플라톤의 ‘국가’를 다시 정독해보면 좋겠다. 플라톤은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철학자가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통치 활동을 하는 철학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제시했다. 그는 “철학자는 지혜를 추구하고 진리를 관조하길 좋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학습과 배움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성향을 지녀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철학자는 무엇보다 내면의 불필요한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절제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상 국가의 다른 계층 사람에게도 욕망의 절제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했다. 우리는 이 말을 곰곰이 음미해 봐야 한다. 어린 학생에게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행위는 교사의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독단과 독선은 총칼보다 무섭고 위험하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