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국립 이건희 미술관

발행일 2021-07-12 14:23:1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전국 40여 개 지방자치단체의 기대를 부풀렸던 ‘이건희 미술관’이 사실상 서울에 건립되는 것으로 지난 7일 발표됐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천여 점을 유가족들이 국가에 기증했고, 이를 전시하고 관리할 ‘이건희 미술관’ 후보지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송현동 부지 두 곳으로 압축됐다.

미술관 유치 경쟁을 펼쳤던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발표 철회와 함께, 객관적 평가체계를 도입한 공모절차를 통한 합리적인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문화의 균형발전을 위해 미술관이 비수도권에 설치돼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 양상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출생지가 대구란 연고성과 함께, 2천500억 원의 건립비 전액을 부담하겠다고 발표한 대구시는 납득하지 못할 정부의 조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건희 미술관을 대구에 유치하기 위해 발족한 시민추진단도 이건희 미술관 수도권 건립 결정이 불공정하다며 당장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추진단은 앞으로 비수도권 도시들과의 협의를 거쳐 후보지 철회 및 대구 유치를 위한 비수도권 동맹 등 구체적인 대책을 모색할 계획이다.

수성구립도서관도 이건희 미술관 대구 유치를 위해 도서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였다. 또한 범어도서관, 고산도서관, 용학도서관 순으로 미술계를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을 초청해 이건희 미술관이 대구에 유치돼야 하는 이유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특별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 발표로 동력은 떨어졌지만, 이건희 미술관이 대구에 와야 한다는 당위를 강조하기 위해 당초 계획대로 추진 중이다.

이즈음 ‘왜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이 들어서야 하는지’ 정부와 다른 도시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재정립해야 한다. 정부가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의 불만을 의식해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국립문화시설 확충 및 지역별 특화된 문화시설에 대한 지원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대목에도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대구가 한국 근대미술의 중심이었다는 점과 함께, 삼성이 제일모직 터를 개발하면서 약속했던 미술관 건립 약속 등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대구는 독립운동가이자 서양화가인 이상정과 이여성이 태어난 곳이며, 활동한 무대다. 국립국어원장을 역임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발간한 ‘이상정과 이여성’에 따르면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경성에서 뿌리를 내리던 1917년 이상정은 계성학교 도화선생으로 활동했으며, 1923년 대구미술전람회에 이상정과 이여성은 서양화 18점씩을 발표했다. 이같은 미술사적 사실을 통해 대구가 서울과 평양을 잇는 한국 서양미술의 개척지란 점이 부각돼야 한다.

삼성은 1997년 대구시 북구 제일모직 터 개발계획을 대구시에 제출하면서 미술관 건립을 약속한 바 있다. 부지 11만㎡를 대구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계획에는 음악당과 미술관 등의 건립이 포함돼 있다. 음악당은 6층 높이에 2천석 규모로 2001년까지 완공하고, 미술관은 6층 높이에 바닥면적 600평과 연건평 3천평으로 짓겠다는 구체적인 규모까지 제시했다.

이를 위해 일반주거지역이 대부분인 토지 용도를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일모직 터 개발계획이 나온 뒤 토지용도는 일반상업지역을 거쳐, 중심상업지역으로 바뀌었다. 용도가 바뀌면서 땅 면적에 대비해 지을 수 있는 건물의 면적인 용적률이 크게 높아졌다. 당연히 땅값이 크게 올랐다. 삼성은 막대한 이익을 얻은 만큼, 대구시민에게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부 발표에 앞서 한 시사주간지에 실린 기사에서 미술평론가 김윤섭 박사가 밝힌 의견도 참고할 만하다. 김 박사는 “특정 지역에 기증자의 미술품이 모이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유족의 뜻과도 배치되는 것”이라면서 “지역 미술관에 분산 배치한 뒤 소장전과 순회전 등을 잇따라 열어 많은 국민이 골고루 수혜를 보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 세계 주요 도시 다섯 곳에 미술관을 운영하는 구겐하임재단의 국제화 분관 전략을 근거로, 이건희 미술관의 분관 모델을 유도할 수 있다. 구겐하임재단은 미국 뉴욕을 비롯해 이탈리아 베니스, 스페인 빌바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독일 베를린에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건희 미술관도 2만3천점이나 되는 작품을 한 곳에 보관하고 전시하기에는 많은 만큼, 비수도권에 분관을 두고 많은 국민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김 박사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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