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센티미터 두께의 손가락을 통과하는/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 불투명한 분홍 창이/ 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 국경이 있는 손바닥은/ 역광을 움켜쥐었다만/ 실핏줄 같은 종려 이파리는 어찌 얼비치는 걸까/ 구석구석 드러난 명암이기에/ 손가락은 눈이 없어도 표정이 있지/ 햇빛이 고인 손톱마다/ 환해서 비릿한 슬픔// 손바닥의 넓이를 곰곰이 따지자면/ 넝쿨식물이 자랄 수 없을까/ 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의 햇빛이 키우고,/ 분홍색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 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검은색」 (문학과지성사, 2015)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한 결과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도 검다. 검은색은 가장 강력하고 통일된 모습이다. 최종적이고 적막한 상태를 상징한다. 가끔 파멸과 죽음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막강한 힘을 가진 악마에서부터 권위와 권력을 가진 교황이나 절대군주를 망라한다. 반면, 화려한 무채색의 우아함과 단순함으로 패션디자이너를 매혹시키고 먹음직한 색으로 미식가의 눈길을 끈다.

검은색과 겨루는 경쟁자는 흰색이다. 흰색은 모든 빛을 거부한 ‘색 아닌 색’이다. 백색은 순결하고 신성한 이미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나 새로운 출발을 은유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한 것처럼 웨딩드레스에 사용되고 유령이나 귀신이 즐겨 입는 옷에도 자연스럽게 차용된다. 요리사, 의사, 간호사, 해군 등의 제복으로 선호되고 있을 뿐 아니라 장례용 의복에도 채택된다. 흰색은 단순하고 순수하며 나아가 통합의 의미를 갖는다.

검은색과 흰색은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다. 모든 빛에 공평한 무채색이란 점은 서로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기능하지만 흡수와 반사라는 차이점은 상호 밀쳐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모든 빛이 모여 백으로 변신하고 모든 색이 모여 흑으로 변모하는 이치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몸체를 공유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흑색과 백색에 대한 시인의 유난한 선호는 어쩌면 운명적인 인과인지 모른다.

손에 비치는 빛은 흡수와 반사를 조절함으로써 그 의사를 전달한다. 우선 손의 정체성을 분홍빛 창으로 설정한다. 독립된 손에 잡힌 역광은 종려나무 이파리 같은 손금을 그려낸다. 손바닥에 각인된 비밀의 의미를 가늠해보지만 그 윤곽만 겨우 짐작해볼 따름이다. 손바닥과 손가락 구석구석에 남긴 세심하고 사려 깊은 명암이 해독할 수 없는 암호처럼 난해하다. 빛의 말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지만 그 언어는 여전히 낯설다.

흡수와 반사의 비율을 미세 조정함으로써 빛은 손가락과 소통을 시도한다. 명암으로 표정을 지어 내심을 내보인다. 그 표정을 보고 빛의 말을 짐작한다. 빛의 투과비율을 높인 손톱이 환하다. 손톱을 통해 살아있는 살점의 비린내가 빨갛게 다가온다. 문득 손은 넝쿨식물의 손으로 형상화된다. 무엇이든 잡고 의지하라는 뜻인가. 분홍빛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손바닥 위로 넝쿨식물을 심는다면 손가락뼈를 타고 자랄 터다. 빛은 무에서 유를 뽑아낸다. 그 순간이 빛의 아름다움이다.

색은 인간이 독창적으로 인지하는 의식작용이다. 다른 존재가 인지하는 색과 같다고 장담할 수 없다. 색은 빛이 전하는 뜻을 인간이 독자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은 허상이다. 빛은 nothing이자 everything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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