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을 뛰어내리려는 뒷덜미를 잡는다//가지 끝에 매달린 저녁의 한 잎사귀//붙들린 사그라질 붉음, 꺼질 듯 파닥인다//마지막 화주 한 잔 그림자 짧아지고/아궁이에서 갓 꺼낸 잉걸불처럼 붉은 혀//완경(完鏡)의 제 몸 바꾸어 바람으로 다시 설 때//막장 갱 속 어둠에 얼굴을 벗어두고//노 젓고 출렁이다 가라앉는 물살 속//뭇별들 천의 모서리가 둥글게 자전한다

「시조21」(2021, 봄호)

선안영 시인은 전남 보성 출생으로 2003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초록몽유’, ‘목이 긴 꽃병’, ‘거듭 나, 당신께 살러갑니다’, ‘말랑말랑한 방’이 있다.

‘절색’은 무슨 뜻인가? 천하절색에서 천하가 생략된 말인가? 견줄 데 없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용모 또는 그런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인데 언제 들어도 떨림이 온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대뜸 절벽을 뛰어내리려는 뒷덜미를 잡는다, 라는 긴박한 상황 설정으로 시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정황에서 가지 끝에 매달린 저녁의 한 잎사귀를 읽는다. 미묘하다. 그 순간 붙들린 사그라질 붉음이 꺼질 듯 파닥이는 것을 본다. 마지막 화주 한 잔 그림자 짧아지고 아궁이에서 갓 꺼낸 잉걸불처럼 붉은 혀의 이미지가 등장해 긴장감을 높인다. 완경의 제 몸 바꿔 바람으로 다시 설 때다. 그리고 끝수는 막장 갱 속 어둠에 얼굴을 벗어두고 노 젓고 출렁이다 가라앉는 물살 속 뭇별들 천의 모서리가 둥글게 자전한다, 라고 끝맺고 있다. 자전은 천체가 그 자체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스스로 회전하는 운동인데 이러한 이미지와 절색은 어떤 상호작용 혹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독자가 판단하고 음미할 일이다. 매우 개성적인 발화로 새로운 시조를 쓰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미지의 구사가 이채롭기 때문이다.

그는 또 ‘공’을 통해 사물의 역할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명징하게 노래하고 있다. 천의 환호 무한 질주를 거치면서 공을 쌓고, 공을 허문 모습을 예의주시하다가 늘 공은 간절한 곳이 정면이고 뒷모습은 없는 존재임을 자각한다. 공에 대해 적확하게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수없이 차인 적 많아 갑옷 두른 상처들뿐이라는 절실한 상황을 부각시키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중력에서 벗어나 황홀한 적 있었지만 실밥 뜯긴 사이마다 모서리가 자라고 있다는 점을 들춰내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그리고 결구는 반전을 보인다. 허공을 다 끌어안아 몸 풀어 공(空)이고픈, 이라는 간절한 갈망으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공이 축구공인지, 공(空)인지 헷갈리도록 전개하고 있는 점은 화자의 의도일 것이다. 아무튼 어떻게 읽든지 이 시조는 새롭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실로 사유의 깊이가 만만치가 않다.

그는 ‘입춘’에서 또 한 번 섬세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흰 매화 꽃눈 위로 내려 쌓인 봄눈 녹아 귀밑머리 솜털을 거울 들어 매만지다가 실뿌리 돋아난 발에 이쁜 신발 사러간다, 라는 표현이 전부인데 몇 번이고 되읽게 만든다. 그것은 실뿌리 돋아난 발, 이라는 구절 때문이다. 어떻게 이러한 미묘한 표현을 떠올리게 됐을까? 시심이 이토록 미쁠 수가 있을까? 단순히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터다. 언어를 오래도록 매만지는 중에 저절로 얻은 가구다. 독자는 때로 이러한 표현과 맞닥뜨리면서 말 못할 희열을 느낀다. 시 읽기는 진실로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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