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내가 잠든 틈에 시계들 사이에 벌어진 언쟁을 들었다. 그날 밤 내가 잠든 틈을 타 그것들이 대체 무엇에 대하여 다투고 있었는지 아는가? 유산분배, 내가 죽은 뒤 내가 남길 유산을 분배하는 문제를 두고 다투고 있었단다./ 그렇지만 내가 죽은 뒤 고아가 된 나의 시계들을 위하여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몇 편의 바보스런 소설과 우스꽝스런 시를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없지. 그런데 그것들이 대체 무얼 위해서 그토록 격렬히 다투었던지 아느냐?/ 오, 부처님! 내 불쌍한 시계들을 가엾게 여기소서!// 벽시계는 다른 시계들을 향하여 자신은 나의 외투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오랫동안 나와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외투! 그건 지난 가을 길버트 거리에 있는 중고품상에서 산 것인데…/ 그러나 탁상시계는 반대하며 말하기를 오직 자신만이 아침마다 내 잠을 방해함으로써 내 생명을 단축하는데 실제적으로 기여했으니 외투는 물론이고 내 구두까지도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내 구두! 그건 지난해 자살한 내 러시아 친구 마크 샤트노부스키로부터 얻은 것인데…/ 손목시계마저 나서서 자신이야 말로 내 손목에서 나는 악취를 참으면서 오직 내가 죽기만을 기다려 왔다고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도 내 소설과 시 따위는 원치 않았다./ 오, 부처님! 내불쌍한 시계들을 가엾게 여기소서!/ 그것들의 그 더러운 논쟁을 들으면서 나는 몹시 민망스러웠던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그것들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시계들의 푸른 명상」 (민음사, 1994)

벽시계와 탁상시계, 손목시계는 시인의 상속권자다. 어느 날, 시인이 옆에서 자고 있는데 유산을 둔 논쟁이 셋 사이에 벌어졌다. 미리 찜해놓은 값나가는 유산을 서로 차지하고자 상대방에게 그 정당성을 나름대로 설득하고 있다. 뉴스나 구전으로 상속 다툼을 듣긴 했지만 직접 당하긴 처음이다. 옆에서 잠든 척 하고 있자니 기가 막힌다. 절로 헛기침이 나온다.

벽시계는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이유로 상징성 있는 외투를 희망한다. 외투는 집 정도일 수 있을 듯하다. 탁상시계는 시간을 허송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통제한 점을 들어 외투와 구두를 요구한다. 구두는 패물이나 장신구를 상징하는 지도 모른다. 손목시계는 험한 일을 도맡아 하고 뒤치다꺼리를 다했다는 걸 내세워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몫을 내놓으라고 난리다.

각자의 주장이 근거 없진 않다. 허나 어떤 일이든 순서와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유산 배분은 사망한 이후 장례를 치른 다음 거론할 성질의 것이다. 사자가 직계 존속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애도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유산 상속이다. 누구든지 사망하면 유산 상속이 진행되지만 인간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조건으로 존재한다. 멀쩡한 피상속인 옆에서 유산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일생을 일정 기간의 시간으로 본다면 시간의 흐름을 구분하는 시계는 그 기간의 특정 부분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시계를 상속권자로 의인화한 근거일 것이다. 구체적 가족관계를 밝히는 부담을 회피하는 의미도 갖는다. 하찮게 얻은 외투 따위의 거푸집에만 관심을 가지고 평생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나 알맹이엔 무관심한 세태를 유머와 위트로 은근히 풍자하고 있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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