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과 일본의 아프가니스탄 대피 수송작전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가족 391명 전원 국내 수송에 성공한 반면 일본은 현지 협력자 뿐 아니라 자국민 탈출도 순조롭게 진행하지 못했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양국의 상반된 결과를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반응들도 있다. 한국은 성공했다며 보란 듯이 우쭐해하거나 일본은 실패했다며 쌤통이라는 식의 인식이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아직 탈출을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남겨진 외국인과 현지인들이 부지기수다. 일본의 실패를 고소해하기 이전에 이들의 안전을 먼저 걱정해야 할 일 아닌가.

이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심리현상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한다. 샤덴프로이데는 손실 혹은 고통을 뜻하는 ‘Schaden’과 환희, 기쁨을 뜻하는 ‘Freude’의 합성어다.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말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말 속담과 비슷한 뜻이다.

나라마다 이와 비슷한 단어가 있고 또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없어지지 않고 쓰여지는 걸 보면 샤덴프로이데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인 것 같다. 씁쓸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심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경쟁상대 혹은 싫어하는 사람이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위로해주면서 속으로는 기뻐하는 경우도 같은 심리다.

각국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를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한국보다 더 빨리 백신접종을 완료했거나 접종률이 높은 선진국에서 다시 확진자수가 늘어날 때면 내 맘속에서 ‘사악한 즐거움’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가 쓴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라는 책에서 소개한 러시아 민담이 떠오른다. 부의 상징인 암소 한 마리를 가진 부잣집 옆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부잣집의 암소는 농부가 평생을 벌어도 사지 못할 가축이었다. 이를 부러워한 농부는 하느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마침내 하느님이 농부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가난한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이웃집 암소를 죽여주세요.”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대표적인 심리다.

경상도 방언에 ‘꼬방시다’는 말이 있다. 고소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꼬방시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특별하게 정해져 있었다. 평소 누가 봐도 미운 짓을 하던 사람이 불행해졌을 때 사용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정의냐 혹은 부조리냐 상관없이 이념적으로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꼬방시다는 생각을 한다. 그나마 그런 생각만 한다면 나은 편이다. 요즘은 상대의 불행을 대놓고 기뻐한다. 대놓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전격적인 의원직 사퇴와 대선 불출마를 두고도 이 같은 심리가 표출되고 있다. ‘책임지는 정치, 염치를 아는 정치’라는 호평과 함께 여당에서는 ‘권익위 조사를 부정하면서 사퇴한다는 건 내로남불과 다름없다’며 의원직 사퇴를 폄하하고 있다.

정치인의 도덕성 기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윤 의원의 사퇴의 변은 평가 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동안 윤 의원의 대여 투쟁력 때문에 거북해 하던 일부는 쌤통이라며 고소해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도덕성이나 책임정치와는 먼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에만 급급하고 다른 사람의 의혹은 들춰내고 부풀리는 일에는 정신없이 매달린다.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샤덴프로이데’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는 지난번 여당의원들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조사결과 발표 때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의 실수나 잘못, 비극을 보고 쾌감을 느끼고 이를 확대하고 대서특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건 큰 슬픔이다. 상대 진영이기 때문에 더욱 이를 악물고 부딪친다면 언젠가는 “이웃집 암소를 죽여달라”는 농부의 기도가 현실화할 수도 있어서다. 더 이상 이웃집 암소를 죽이고 싶은 사람을 만들어내선 안될 일이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