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충북재활원장

OTT 매체 중에 대표격인 넷플렉스에서 이단 혹은 사이비 종교로 분류되는 4개의 집단에 대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를 방영했다. 비록 다큐멘터리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각종 언론에서 이어지고 있는 JMS교나 아가동산에 대한 후속 기사로 어느정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종교학자들은 한국을 ‘종교박물관’이라 부른다. 그만큼 다양한 종교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나 개신교라 할지라도 산하에는 어마어마한 분파가 자리 잡고 있다. 2012년에 발간된 문화관광체육부의 ‘한국의 종교 현황’을 보면, 문체부에 등록된 불교의 종파는 총 130개이고, 개신교의 총파는 118개였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종파만 이 정도이니 비공식 종파까지 합산할 경우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인간은 종교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위기의 상황이나 절박한 상황에서, 자기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는 것이 대표적인 종교적 본성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본성적인 행동에서 보다 구체화된 대상으로 옮겨가고, 같은 대상을 믿는 동료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며 급박한 상황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자기가 믿는 신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을 흔히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종교학적으로 건전한 종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된다고 한다. 먼저 이론적인 측면이다. 모든 종교는 맹신적인 믿음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신앙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부분에서 많은 경우 논리의 비약이나 세뇌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건전한 교리는 100% 이성적인 납득이 가지 않을 수는 있어도, 자체적인 논리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신에 대한 존재증명과 죽음 이후의 삶과 현세 삶의 의미, 윤리적 삶에 대한 가르침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로 건전한 종교는 공동체적 예식을 전제로 한다. 개인이 지닌 종교적 행위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약속된 의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골방에 들어가 자신이 믿는 신에게 어떠한 의식을 치른다 해서 그러한 행동을 종교적 행위로 간주하지는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전한 종교는 사회성을 지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란 단순히 자기들만의 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종교집단이 속한 국가사회이다. 자신들이 속한 국가사회를 포교나 전교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사회에 위해를 가하거나 해악을 미치는 것은 사회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현세 생활과는 구분되는 피안의 삶을 말한다. 이러한 삶은 현세의 삶에서 종교적 가르침에 따른 성실한 삶을 산 신앙인들에게 부여되는 보상과도 같은 성격이 강하다. 그렇지만 풍요로움 내세의 삶이 인원 제한이 있어 경쟁을 통해 들어가야 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이슬람교와 같은 전통적인 종교는 신을 향한 믿음과 그 믿음을 증거하는 삶을 통한 구원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믿음의 삶은 결코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현세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긍정의 시너지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 현재의 풍요로움을 유지하기 위하거나, 현세의 더 큰 축복을 얻기 위해 우리의 삶을 제약하지도 않고, 선착순 경기를 하듯, 경쟁에서 이겨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말하지도 않는다. 결국 ‘지금, 여기에’서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공동선에 부합되는 행복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영생의 행복 또한 불가능한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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