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강왕 개운포에서 처용을 만나, 아내를 만나게 하고 벼슬을 주었다
처용은 동해용왕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헌강왕이 동해 나들이에서 용왕을 만나 인연을 맺으면서 용왕의 아들 처용이 서라벌로 헌강왕을 따라 들어와 신라의 국정에 깊숙이 관여하게 됐다.
헌강왕 시대에 이미 궁예가 후고구려를 설립하고, 견훤이 후백제를 세워 신라를 곳곳에서 압박해왔다. 국내에서도 귀족들의 권력을 둘러싼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신라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처용은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국내외적으로 어지러운 나라살림을 돌보기 위한 군사정책에도 직접 관여해 헌강왕의 정치를 도왔다. 그러나 처용의 정치적 개입은 귀족들의 견제에 막혀 헌강왕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처용은 정치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거기에다 왕의 권유로 얻은 아내마저 역신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신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시 용궁으로 돌아가버렸다.
◆처용랑과 망해사
처용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설화로 기록되어 전한다. 제49대 헌강왕 때였다. 서울부터 전국에 이르기까지 지붕과 담이 즐비하게 이어지고, 초가집이란 한 채도 없었다. 거리에는 연주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사시사철 맑은 바람이 불고, 비는 적당히 내려주었다.
이때 대왕이 개운포로 놀이를 나갔다. 왕이 가마를 돌려 돌아오다 해변가에서 점심을 들려는 참이었다. 홀연히 운무가 가득하여 길을 잃었다. 괴이하게 여겨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이 “이는 동해 용이 조화를 부린 것입니다. 좋은 일을 행해야만 풀리겠습니다”고 했다.
이에 왕은 신하에게 용을 위해 가까운 곳에 절을 짓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왕이 명령을 내리자 운무가 걷히며 흩어졌다. 그래서 왕이 머물렀던 곳을 개운포라 부른다. 동해 용은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왕의 가마 앞에 나타나 덕을 칭송하면서 춤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일곱 번째 아들은 왕을 따라 서라벌로 들어가 왕정을 보좌하였는데, 그의 이름을 ‘처용’이라 불렀다. 왕은 급간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그의 마음을 붙잡아두고자 했다.
그의 아내는 매우 아름다웠다. 역신이 처용의 아내에게 푹 빠져 사람으로 변장하고 밤에 그 집에 들어와 남몰래 함께 자게 되었다. 처용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니 침상에서 두 사람이 자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처용은 조용히 돌아서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물러났다.
“서울의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인가/ 본대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 감을 어찌하리.”
처용의 노래를 들은 역신이 모습을 드러내 처용 앞에 무릎 꿇고 사죄했다. “내가 그대의 처를 탐내서 지금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화를 내지 않으시니, 감복하고 탄복할 일입니다. 맹세컨대 이후로는 그대의 얼굴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때부터 나라 안의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형상을 붙여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 좋은 일을 맞아들이려는 풍습이 생겨났다.
헌강왕은 개운포에서 돌아온 다음 영축산의 동쪽 기슭이 좋다 하여 절을 짓고 ‘망해사’라 불렀다. ‘신방사’라고도 하는데 이는 동해 용을 위해 지은 절이다.
◆처용의 정치
처용은 왕의 신하로서 정치에 적극 개입하였다. 그는 백성들의 고통과 억울함을 듣고, 왕에게 공정하고 자비로운 정책을 행하라고 권했다.
처용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왕은 처용의 충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처용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귀족들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처용은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썼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을 나누어주고, 병든 사람들에게 약을 주고,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해주었다. 그는 또한 학문과 예술을 즐겨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해 육성하였다. 자연스럽게 백성들은 처용을 존경하며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왕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은 처용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시기하고 부러워했다. 귀족들은 처용이 왕을 배반하고, 나라를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방하고 비난했다. 귀족들은 처용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왕에게 억지스런 명령을 내리도록 종용하며 처용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다.
처용은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뎌내었다. 그는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로서 묵묵히 인내하면서 처음과 같이 왕과 나라를 위해 일했다. 그는 또한 백성들을 위해 힘쓰는 것이 자신의 삶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악행은 점점 심해지고, 왕 또한 처용의 충고를 듣지 않고 향락에 빠져들면서 정치를 내팽개치기 시작했다. 왕이 처용의 충언을 듣지 않고, 심지어 곳곳에서 힌트를 주는 신들의 경고 또한 무시하면서 나라는 점점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결국, 처용은 귀족들의 음모로 인해 옥에 갇혔다. 귀족들은 처용이 왕을 살해하려 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하였다. 왕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끝내 처용이 자신을 배반한 것으로 믿었고, 처용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렸다. 처용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처용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처용은 감옥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동해 용인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구해주기를 바라면서 습한 곳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동해 용은 이미 오랫동안 인간세상에 관심을 잃었고, 자신의 아들이 인간세상에서 고생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동해 용의 아들들도 처용이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과 같이 동해에서 살아가기를 바랐지만 처용이 겪고 있는 고초는 모르고 있었다.
처용은 결국 혼자 남겨졌다. 그는 옥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자신의 삶에 대해 회고하였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기억들을 되새겼다. 그는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을 떠올렸다. 또 왕과 나라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되돌아보았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처용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헛되고 고통스러웠는지도 깨달았다. 그는 왕과 귀족들에게 억울하고 분개했다. 또한 자신을 잊고 있는 아버지 동해 용왕과 형제들을 원망하면서 슬퍼하기도 했다. 또한 신라가 패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산신들도 미워하기 시작했다.
처용은 마지막으로 서라벌에서 얻은 자신의 아내를 생각했다. 그의 아내는 처용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처용의 고난을 이해하면서 함께 견디어 왔다.
그러나 처용은 귀족들의 음모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도 헤어져야 했다. 처용은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감사하면서도 한편 서운한 감정을 가슴 깊이 묻어야 했다.
◆처용의 귀향
처용은 그가 군졸들에게 잡혀 투옥되기 전,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다 댓돌에 놓인 네짝의 신발을 보면서 귀족들의 철저한 농간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바닷가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귀족들의 사주를 받은 군졸들이 처용을 쫓아와 체포했다. 처용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군졸들의 오라에 묶여 감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처용은 꿈속에서 동해 용왕을 만났다. 동해 용왕은 처용에게 자신이 인간세상에 관심을 잃은 것을 후회하고, 아들이 인간세상에서 고생하는 것을 모른 채 까마득히 잊고 지낸 것을 사과했다. 동해 용왕은 처용을 쓰다듬으면서 자신의 아들로서 이제 그만 동해로 돌아오라고 했다.
처용은 동해 용왕의 말에 고민이 깊어졌다. 그는 인간세상에서 살아온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슬프다고 했다. 그는 동해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용왕은 처용에게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동해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며 “인간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잊고, 동해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며 돌아오라고 거듭 권유했다.
처용은 아버지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세상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세상에서 자신의 죽음을 애통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처용은 동해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동해 용왕에게 자신의 결심을 말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동해 용왕은 처용에게 자신도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처용을 뜨겁게 끌어안았다.
다음 날 처용은 옥에서 탈출했다. 그는 옥문을 나와서 자신의 집으로 갔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마지막으로 이별하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도 처용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함께 가자고 부탁했다.
그러나 처용은 그녀와 함께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잊고, 다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녀는 처용의 말을 듣고, 슬픔과 회한에 가득찬 눈물을 흘렸다.
마음을 고쳐먹은 처용이 옥에서 탈출한 것을 알고, 귀족들은 자신들이 고용하고 있는 병사들까지 동원해 그를 잡으려 했다. 귀족들은 처용을 둘러싸고, 칼과 창으로 공격하였다.
동해 용왕은 자신의 아들인 처용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아들들을 보내 처용을 구해오라고 했다. 입에서 불과 물을 내뿜는 처용과 형제들의 신위에 놀란 군졸들은 겁에 질려 도망갔다.
처용은 천천히 형제들과 하늘을 날아서 동해로 돌아갔다. 그들은 인간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신라사람들의 내용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