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그곳에서는 언제나 전쟁이 벌어졌지만 우리는 이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다. 밀라노의 가을은 춥고 아주 빨리 어두워졌다. 어두워지면 전깃불이 켜졌는데 이때 쇼윈도를 들여다보면서 거리를 따라 걷는 것이 즐거웠다. 가게 밖에는 사냥에서 잡힌 짐승들이 많이 걸렸다. 흰 눈이 여우 가죽에 분처럼 뽀얗게 내려앉았고, 바람에 꼬리가 흔들거렸다. 사슴은 내장이 텅 빈 상태로 뻣뻣하고 육중하게 매달렸으며,/(…)/병원에 들어가자면 늘 운하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 세 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중 한 다리에서는 아낙네 한 사람이 군밤을 팔고 있었다. 그녀가 지펴 놓은 숯불 앞에 서 있으면 몸이 따뜻했으며, 군밤을 주머니에 넣으면 조금 뒤 따뜻해졌다. 병원 건물은 매우 낡았지만 아주 아름다웠다.

「헤밍웨이 단편선 1」(2013, 민음사)



소설에 등장하는 병원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육군 대병원 ‘오스페달레 마조레’다. 이 병원은 전쟁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하는 후방 병원이다.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적십자 부대의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었다. 이후로도 그는 여러 전쟁을 취재하며 다양한 경험을 소재로 소설 창작에 임했다. 아마 이 소설 역시 작가의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다.

인용한 대목에서 서술자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즐거웠다’라거나 ‘아름다웠다’란 그의 감상이 불편하다. 전쟁 중이지 않은가. 하지만 “내장이 텅 빈 상태로 뻣뻣하고 육중하게 매달”린 사슴은 전쟁의 냉혹함을 미니멀리즘적으로 표상한다. 그의 이러한 소설 작법을 일컬어 빙산 이론(Iceberg Theory)이라고 한다. 그는 소설에서 보다 깊은 의미는 노골적으로 표면에 드러나서는 안 되고, 내포와 암시를 통해 빛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수면 위의 빙산은 작가가 직접적으로 드러내야 할 표면적 요소이고, 수면 아래의 은밀히 감춰진 빙산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다 깊은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만약 한 산문 작가가 자기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알고 있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생략할 수 있으며, 작가가 충분히 진실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독자들은 마치 작가가 그것들을 진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빙산 이론의 위엄은 오직 팔 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물 위에 떠 있다는 데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예컨대 “병원 건물은 매우 낡았지만 아주 아름다웠다.”라는 인용 부분 뒤에는 “앞마당에서는 장례식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문장이 뒤따른다. 헤밍웨이는 여기에 더 이상 무엇을 덧붙이지 않는다. ‘팔분의 칠’에 해당하는, 전사한 젊은이라든가 민간인들의 주검, 전쟁을 겪고 돌아온 이의 내면에 도사린 허무를 생각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신상조(문학평론가)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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