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단편선 1」(2013, 민음사)
소설에 등장하는 병원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육군 대병원 ‘오스페달레 마조레’다. 이 병원은 전쟁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하는 후방 병원이다.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적십자 부대의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었다. 이후로도 그는 여러 전쟁을 취재하며 다양한 경험을 소재로 소설 창작에 임했다. 아마 이 소설 역시 작가의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다.
인용한 대목에서 서술자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즐거웠다’라거나 ‘아름다웠다’란 그의 감상이 불편하다. 전쟁 중이지 않은가. 하지만 “내장이 텅 빈 상태로 뻣뻣하고 육중하게 매달”린 사슴은 전쟁의 냉혹함을 미니멀리즘적으로 표상한다. 그의 이러한 소설 작법을 일컬어 빙산 이론(Iceberg Theory)이라고 한다. 그는 소설에서 보다 깊은 의미는 노골적으로 표면에 드러나서는 안 되고, 내포와 암시를 통해 빛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수면 위의 빙산은 작가가 직접적으로 드러내야 할 표면적 요소이고, 수면 아래의 은밀히 감춰진 빙산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다 깊은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만약 한 산문 작가가 자기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알고 있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생략할 수 있으며, 작가가 충분히 진실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독자들은 마치 작가가 그것들을 진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빙산 이론의 위엄은 오직 팔 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물 위에 떠 있다는 데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예컨대 “병원 건물은 매우 낡았지만 아주 아름다웠다.”라는 인용 부분 뒤에는 “앞마당에서는 장례식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문장이 뒤따른다. 헤밍웨이는 여기에 더 이상 무엇을 덧붙이지 않는다. ‘팔분의 칠’에 해당하는, 전사한 젊은이라든가 민간인들의 주검, 전쟁을 겪고 돌아온 이의 내면에 도사린 허무를 생각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신상조(문학평론가)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