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대표적으로 미국 보호무역주의 움직임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자국 산업의 피해 또는 성장을 저해했다는 명목으로 200개가 넘는 중국산 상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anti-dumping duty)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는 올해 3분기까지 부과 중인 전체 반덤핑 관세 사례의 30%를 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내년 11월에 있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박탈, 4년간에 걸쳐 중국으로부터의 모든 필수품 수입 단계적 중단,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의 보편적 기본관세 부과 등과 같은 끔찍한 수준의 보호무역정책이 채택될 수도 있다.
자국우선주의 움직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칩스법, EU의 유럽반도체법과 그린딜 산업 계획 및 핵심원자재법, 일본은 추가경정예산 마련을 통한 첨단 반도체 생산기업 지원, 인도의 세미콘 인디아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법 또는 계획은 모두 지난 2, 3년 사이에 확정된 것들로 글로벌 공급망 이슈의 핵심이 되는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산업에 관한 것들이다. 물론, 올해 우리나라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등을 통해 반도체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선 바 있다.
문제는 이처럼 지정학적 긴장 확대로 다자간 협력이 약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글로벌 경제의 분절화 현상이 이제는 잠깐 내비쳤다가 사라질 변수 또는 리스크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우리경제가 부담해야 할 상수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역시 수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교역 분절화 정도에 따라 우리 수출이 약 3~10% 정도 축소될 것이라고 한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는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GDP)가 4~10% 정도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對 중국 디리스킹(de-risking; 위험제거)의 리스크를 지적한 바 있지만, 이 또한 글로벌 경제의 분절화 현상의 부작용을 추정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은행의 의도와 맥락을 같이 한다.
1944년 GATT(자유무역 촉진을 위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체결과 이를 계승한 1985년 WTO(세계무역기구) 설립 이후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세계는 교역과 성장 측면에서 자유무역주의에 많은 빚을 지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그 아래에서 경쟁력을 키워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분절화 현상은 더 이상 우리경제가 자유무역주의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국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지해 나가면 적어도 수출 경쟁력은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우리경제의 성장 기반도 흔들릴 것 같지 않지만, 이런 지경학(geo-economics)적인 변화에 적응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없다면 허망한 기대에 그칠 수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