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글로벌 경제의 분절화(fragmentation) 현상이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발생한 공급망 위기 여파로 심화되고 있다.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이라 불리면서 동맹국 내지는 우방국 중심으로 재편되던 글로벌 공급망이 이제는 자국중심주의나 보호무역주의라는 형태로 본격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보호무역주의 움직임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자국 산업의 피해 또는 성장을 저해했다는 명목으로 200개가 넘는 중국산 상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anti-dumping duty)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는 올해 3분기까지 부과 중인 전체 반덤핑 관세 사례의 30%를 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내년 11월에 있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박탈, 4년간에 걸쳐 중국으로부터의 모든 필수품 수입 단계적 중단,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의 보편적 기본관세 부과 등과 같은 끔찍한 수준의 보호무역정책이 채택될 수도 있다.

자국우선주의 움직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칩스법, EU의 유럽반도체법과 그린딜 산업 계획 및 핵심원자재법, 일본은 추가경정예산 마련을 통한 첨단 반도체 생산기업 지원, 인도의 세미콘 인디아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법 또는 계획은 모두 지난 2, 3년 사이에 확정된 것들로 글로벌 공급망 이슈의 핵심이 되는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산업에 관한 것들이다. 물론, 올해 우리나라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등을 통해 반도체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선 바 있다.

문제는 이처럼 지정학적 긴장 확대로 다자간 협력이 약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글로벌 경제의 분절화 현상이 이제는 잠깐 내비쳤다가 사라질 변수 또는 리스크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우리경제가 부담해야 할 상수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역시 수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교역 분절화 정도에 따라 우리 수출이 약 3~10% 정도 축소될 것이라고 한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는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GDP)가 4~10% 정도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對 중국 디리스킹(de-risking; 위험제거)의 리스크를 지적한 바 있지만, 이 또한 글로벌 경제의 분절화 현상의 부작용을 추정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은행의 의도와 맥락을 같이 한다.

1944년 GATT(자유무역 촉진을 위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체결과 이를 계승한 1985년 WTO(세계무역기구) 설립 이후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세계는 교역과 성장 측면에서 자유무역주의에 많은 빚을 지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그 아래에서 경쟁력을 키워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분절화 현상은 더 이상 우리경제가 자유무역주의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국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지해 나가면 적어도 수출 경쟁력은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우리경제의 성장 기반도 흔들릴 것 같지 않지만, 이런 지경학(geo-economics)적인 변화에 적응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없다면 허망한 기대에 그칠 수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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