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연탄 한 장 무게는 3.65kg이고 사람 체온은 36.5℃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연탄 한 장은 6시간 정도 불탄다. 조절을 잘하면 8시간은 유지된다. 그래서 자기 전에 연탄을 갈면 밤새 따뜻하게 지내고 아침에 새것을 넣으면 됐다. 연탄불은 바람구멍으로 불 조절을 한다. 어린 시절 엄마는 연탄을 아끼려고 바람구멍을 막고, 아이들은 너무 춥다며 엄마 몰래 구멍을 열곤 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엄마로부터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은 연탄을 생각하면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운동화를 빨아 연탄불에 말리다가 잠시 방심하여 태워 먹고는 한 부분이 불에 탄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서 놀림을 받았던 일이 생각난다. 독한 가스 냄새를 견뎌내며 밤, 감자, 고구마 등을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혹한의 겨울도 즐겁기만 했다.

연탄을 실물로는 보지 못한 젊은이가 제법 많다. 1990년대 기름보일러와 도시가스 공급으로 대도시에서는 연탄이 급속도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곳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자료에 따르면 80세 이상 고령층이 사는 일부 달동네에서는 연탄을 땐다. 연탄에 의지하는 노인들 상당수는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들 대부분은 정부 지원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통계에 따르면 2006년에는 약 27만, 지금은 약 7만 4천 가구가 연탄으로 겨울을 보낸다. 조만간 5만 가구 선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연탄 나눔 현황을 보면 2021년에 500만 장이었다. 지난해 400만 장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11월 기준으로 159만 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30만 장과 비교해 절반도 안 된다. 코로나와 경제난, 고물가 여파 등으로 기부가 줄어 연탄 은행은 올해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25% 낮게 잡았다고 한다.

연탄을 생각하면 늘 이 시가 떠오른다. “지상에는/아홉 켤레의 신발./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알전등이 켜질 무렵을/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 중략 - 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존재한다./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 시인의 시 ‘가정’이다. 나는 9남매 막내다. 아홉 마리의 강아지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해야 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늦게 귀가하는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구들목에 밥그릇을 묻어 놓곤 했다. 장난을 치다 그것을 발로 차서 밥이 쏟아졌는데 엄마가 그릇에 다시 밥을 담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시절을 이겨내고 우리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옛날부터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함께 살기 위해 동네 사람들은 온정의 손길을 뻗쳤다. 최근에는 이웃돕기 열기가 식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를 택했다. 견리망의를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견리망의 현상이 난무해 나라 전체가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며 “정치란 본래 국민들을 바르게 다스려 이끈다는 뜻인데 정치인은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정치인들은 말만 민생이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겐 정말로 관심이 없다. 가진 자와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서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으니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도 일반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극단적 가족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해를 돌아본다. 많은 사람이 몸은 고단한데 실익이 없었다고 탄식한다. 불황과 고물가로 모든 것이 움츠린 세모의 풍경이 그 어느 해 보다 우울하고 쓸쓸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동전이나 지폐를 넣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선하고 착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훈훈하다. 그 온기가 아직은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삼각 다리 위 자선냄비가 연탄난로 위 물 주전자처럼 펄펄 끓어 넘치길 소망해 본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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