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12개 촌 중 6개 촌장들이 힘을 모아 나라 세우기로 결의

▲ 고야촌 호진 촌장이 탄강했다는 금강산 정상.
▲ 고야촌 호진 촌장이 탄강했다는 금강산 정상.

 

 

 


우리의 역사는 대부분 신화로 시작된다. 신화이지만 흔적이 남아 역사로 입증되고 있다. 역사는 사라진 시간 속에서 단편적인 조각들로 존재하고 있어 상상력을 동원해야 그 퍼즐을 얼추 맞춰볼 수 있다.



삼국유사는 물론 삼국사기, 화랑세기 등의 역사적 기록들도 생생한 역사를 단편적인 사건의 기록과 신화적인 이야기로 전하고 있지만 그 흔적들이 남아 있어 구체적인 역사로 기억하게 한다.



어차피 신화로 전하는 역사라면 흥미롭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상상해 재구성하는 일이 생산적인 일이다. 신화와 전설, 설화로 전하는 이야기의 흔적을 더듬어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 해 문화산업화 하는 일이 가치롭다.



스토리텔링 한 이야기들이 영화, 드라마,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발전해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문화산업이 풍성하게 되고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면서 신화속의 역사를 연재한다.



첫 이야기로 신라를 건국하는 일에 직접 나선 육부촌장들이 신으로 강림해 박혁거세를 옹립해 나라를 세웠다는 신화 현장을 둘러보고 스토리텔링한다.

 

 

 

 

 

 

▲ 양산촌 알평 촌장이 탄강해 몸을 씻었다고 전하는 광림대 석혈.
▲ 양산촌 알평 촌장이 탄강해 몸을 씻었다고 전하는 광림대 석혈.

 





◆신화: 신들의 강림

육부촌장에 대한 신화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에 비슷한 내용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야기 내용이 보다 구체적인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신의 모습으로 강림해 육부촌을 형성한 촌장들의 활약을 정리해 본다.



진한 땅에는 옛날에 여섯 촌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 양산촌으로 그 남쪽이 고려시대의 담엄사이다. 촌장은 알평으로 처음 표암봉에 내려와 급량부 이씨의 시조가 된다.



둘째는 돌산 고허촌이다. 촌장은 소벌도리으로 처음 형산에 내려와 사량부 정씨의 시조가 된다. 고려시대에는 남산부라 하는데 구량벌 마등오, 도북, 회덕 등 남쪽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는 무산 대수촌이다. 촌장은 구례마으로 처음 이산(개비산)에 내려와 점량부 또는 모량부 손씨의 시조가 된다. 고려시대에는 장복부라고 하는데 박곡촌 등 서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는 취산 진지촌이다. 촌장은 지백호으로 처음 화산에 내려와 본피부 최씨의 시조가 된다. 고려시대에 통선부라고 했는데 시파 등 동남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최치원이 바로 본피부 사람이니 지금도 황룡사 남쪽에 있는 미탄사 앞에 옛날 집터가 있어 최치원의 옛집이라고 말하여지는 바 아마도 명백한 것 같다.

 

 

 

 

▲ 소금강산에서 내려다 보는 경주 시가지 전경.
▲ 소금강산에서 내려다 보는 경주 시가지 전경.

 



다섯째는 금산 가리촌이다. 촌장은 지타으로 처음 명활산에 내려와 한기부 배씨의 시조가 된다. 고려시대에는 가덕부라고 하였는데 상서지, 하서지, 내아 등 동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여섯째는 명활산 고야촌이다. 촌장은 호진으로 처음 금강산에 내려와 습비부 설씨의 시조가 된다. 고려시대의 임천부로 물이촌, 잉구며촌, 궐곡 등 동북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이 글을 보면 여섯 부의 시조는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 같다. 노례왕 9년 처음으로 6부의 이름을 고치고 또 여섯 성을 주었다. 지금의 풍석에 중흥부를 어머니로 삼고 장복부를 아버지로 삼으며 임천부를 아들, 가덕부를 딸로 삼았는데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전한 지절 원년(BC 69) 임자 3월 초하루에 여섯 부의 시조들이 각각 자제들을 거느리고 다함께 알천 둑 위에 모여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위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고 안일하여 제멋대로 하고 있다. 덕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창건하고, 도읍을 정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리하여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밑에 있는 나정가에 번개빛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우고, 한 마리의 백마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촌장들이 그곳을 찾아가 살펴보니 자줏빛 알 한 개가 있었다. 말은 사람을 보자 길게 울면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뜨리자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그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랍고 신비스러워 동천에서 목욕을 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은 맑고 밝았다. 이로 인하여 박과 같이 생겨 박씨 성을 붙이고, 밝게 빛난다는 의미로 ‘혁거세’라 이름 지어 왕으로 추대했다.

 

 

 

 

▲ 경주 이씨의 시조 양산촌 알평 촌장 경모비.
▲ 경주 이씨의 시조 양산촌 알평 촌장 경모비.

 





◆흔적: 신들의 탄생지

-소금강산: 금강산은 신라 왕경오악 중 북악으로 불렸다. 북쪽의 금강산이 이름 나면서 지금은 소금강산으로 불린다. 소금강산에는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해 나라를 건국했던 육부촌장 중 알평 촌장의 탄강지가 있다. 금강산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지로 지정된 표암일대를 비롯해 백률사, 마애삼층석탑, 굴불사사면마애석불, 동천동 마애삼존석불좌상, 석탈해왕릉 등 중요한 문화유적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22년 경주 금강산과 표암봉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지로 지정했다.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은 신라 왕경오악의 북악이자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던 신성한 사령지 중의 하나이다. 신라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유적이 밀집된 장소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적이다.



신라시대 왕경오악은 왕경의 중앙과 사방을 둘러싼 신성한 산으로 동악 토함산, 서악 선도산, 남악 남산, 중악 낭산, 북악 금강산이 있다. 이중 신라의 중대한 일들이 있을 때 모여 회의하던 사령지는 동쪽 청송산, 남쪽 우지산, 서쪽 피전, 북쪽 금강산이다.



금강산은 신라건국과 국가 형성 단계의 중요한 신성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기록된 진한 6촌 중 3개 촌의 탄강설화와 연관된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신라시대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되어져 오던 역사적 상징성은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왔다.



또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은 신라 불교 공인의 계기가 된 이차돈 순교와 관련된 신라 불교성지의 공간이기도 하다. 신라불교 공인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차돈과 연관된 백률사와 이차돈순교비 등 불교 수용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금강산 일대에는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경주동천동 마애삼존불상(시도유형문화재) 등 신라불교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다. 또 왕경인의 사후안식처이자 신라 의례의 공간으로도 이용됐다.



경주 탈해왕릉(사적)을 비롯한 금강산 표암봉 일원에 위치한 굴식 돌방무덤의 동천동 고분군은 왕경의 매장공간이 도심에서 주변 산지구릉으로 이동하는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 가리촌 지타 촌장이 탄강했다는 명활산의 복원한 명활산성 전경.
▲ 가리촌 지타 촌장이 탄강했다는 명활산의 복원한 명활산성 전경.

 



문화재청은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은 신라의 정치, 종교, 의례와 관련한 중요한 문화유산이 밀집한 지역으로 신라형성의 터전인 신성한 역사적 공간성과 신라 불교성지의 상징성, 신라 의례의 장소성 등 신라의 중요한 전환기 모습이 잘 드러나는 유적”이라고 평가하고 사적으로 최종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서악의 사적 지정을 통해 왕경오악 모두 사적으로 지정해 신라의 중요한 유적을 제대로 보존하고 관리할 계획이다.



-명활산성: 명활산 또한 육부촌장 중 2명의 촌장 탄강설화가 얽혀 있는 신성한 곳으로 삼국유사 등이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중요 사적지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명활산에는 신라시대 초기부터 산성을 쌓아 월성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던 곳이다. 특히 자비왕은 월성을 수리하기 위해 명활성을 궁성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후 진흥왕이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선덕여왕 당시에는 비담 등이 반란을 일으켜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으로도 전하고 있다.

 

 

 

 

▲ 알평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들어가는 산앙문.
▲ 알평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들어가는 산앙문.

 





◆스토리텔링: 육부촌장

알평 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되풀이 하던 알평은 드디어 마음을 굳힌 듯 천천히 일어서 긴 칼을 들어 옆구리에 찔러 넣었다. 방문을 열고 성큼성큼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림자처럼 그의 심복 명도가 두어 걸음 뒤로 따라붙었다.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진한 부족의 규합을 위한 모임을 주선하기로 한 것이다.



알평은 대대로 가문에 전해오는 숙제와 같은 전언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알평의 아버지는 “너는 진한으로 내려온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뿌리를 둔 한 민족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며 “흩어져 사는 우리 민족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길러 지켜야 한다”고 누차 반복해 일렀다.



한반도의 동남쪽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진한의 12부족들은 대부분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이주해온 연나라 사람들이다. 이들은 BC 200여 년 전부터 50~100여 명씩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살기 위한 터전을 찾아 내려왔다. 고구려로 발전한 마한지역을 지나 한반도의 남단 진한 지역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12개 지역에 부족을 형성하며 삶의 터전을 구축하고 있었다.

 

 

 

 

▲ 양산촌 알평 촌장이 탄강한 표암봉의 박바위.
▲ 양산촌 알평 촌장이 탄강한 표암봉의 박바위.

 



그러나 왜구들이 수시로 출몰해 짐승과 곡식을 수탈해 가는 한편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괴롭히며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켜 부족들이 마음 놓고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알평촌장은 일찍부터 12개 촌 중에서도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양산촌을 포함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육촌을 중심으로 진한 지역을 하나의 세력으로 묶어 연나라의 후손들을 규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이웃하고 있는 가리촌과 고야촌의 촌장을 불러 뜻을 함께하기로 하고, 다시 고허촌, 대수촌, 진지촌의 촌장들을 일일이 만나 하나의 나라를 세워 촌민들의 편안한 삶을 함께 도모하자고 설득했다.

 

 

 

 

▲ 경주 이씨의 시조 양산촌 알평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악강묘.
▲ 경주 이씨의 시조 양산촌 알평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악강묘.

 



때마침 모두 곡식을 약탈하기 위해 온 왜구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섰던 장정들이 상처를 입어 고민하던 차라 알평의 뜻에 따르기로 마음을 모았다. “우리는 모두 연나라의 후손이요. 하나로 힘을 모아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옛 영화를 다시 찾읍시다”며 힘주어 말하는 알평 촌장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잡고 결의했다.



*이 글의 내용은 문화산업화를 위해 스토리텔링한 것이므로 일반 기록물 또는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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