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br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 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지난 주말 대구에서 전통주 모임 회원들 10여명을 모아 전통적인 방법으로 증류식 소주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시음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모두 전통주 교육과정인 ‘우리술 맛있게 빚기’ 3개월 과정 정규반을 마친 수강생들이었다.

30ℓ 동증류기로 적은 양을 증류하는 정도의 규모였지만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모임이었다.

이날 증류를 하는 막걸리는 모임 회원들이 직접 빚은 술이었다. 막걸리라고 표현했지만 증류를 하기 위한 술은 일반 막걸리와는 조금 다르다. 우선 신맛이 강한 술을 만들어야 이 술을 증류했을 때 소주의 향이 좋아진다. 때문에 일반적인 전통주를 만들 때보다 물을 3배정도 더 넣는다. 고문헌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주 대부분은 쌀과 물의 양이 1:1이다. 이를 기준으로 쌀의 양이 많으면 단맛이 나는 술, 물의 양이 많으면 신맛이 강한 술이 나온다.

신맛을 내는 술을 일부러 만드는 것도 흥미롭지만 또르륵 떨어지는 소주를 잔으로 직접 받아 바로 마셔보는 일은 색다른 경험을 주는 일이었다. 또 진도홍주를 만들 듯 약재인 지초(자초)를 받쳐두고 이를 통과시켜 홍주를 만들어 시음해보는 일도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선지 참석한 전통주모임 회원들은 궁금한 듯 질문도 많고 태도도 진지했다.

이번 행사는 증류주, 그 중에서도 증류식 소주의 판매량이 대폭 늘어나는 트렌드에 맞춰 직접 만들어서 시음해보자는 취지였다. 이날도 정기적인 술 빚기와 계절에 맞춘 절기주 빚기, 전통주대회 개최 등 1년간 계획한 여러 가지 행사 중 하나였다.

소주 제조의 기본 원리는 두 물질의 비점(끓는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은 100℃에서 끓는다. 알코올은 도수와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78~100℃ 사이에서 끓는다. 끓는점이 낮은 물질이 먼저 기체로 바뀌고 이를 응축시켜 받아내는 것이 증류주다.

증류주(소주) 제조법은 고려 충렬왕 때 쿠빌라이 칸이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진출할 때 전해졌다고 한다. 특히 몽골의 주둔지이던 개성, 전진 기지가 있던 안동, 제주도에서 소주 제조법이 발달하였다(위키백과).

고려시대 때 전해진 증류소주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일반 서민들이 즐기기 어려운 사치품이었다. 먼저 막걸리를 빚어야 하고 그 막걸리를 증류하는데 나오는 소주의 양이 아주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왕실이나 사대부는 제한없이 즐겼고 소주를 약으로도 복용할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엔 소주가 귀한 술이었다는 흥미로운 기록들이 있다. 사치품이어서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는 상소도 있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땐 대마도에서 조공을 받고 대마도 영주에게 하사한 술도 소주였다.

1300년대 쯤엔 소주 때문에 알콜중독자가 나오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진안군 이방우(이성계의 맏아들)는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燒酒)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했다” 1393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알코올 95% 에틸알코올인 주정에 물을 탄 희석식 소주가 아닌 증류식 소주의 소비가 근래 급증하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떠오른 홈술 문화의 영향이 크다. 거기에다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에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하이볼(Highball)’ 열풍에 20, 30대 젊은층의 수요가 급증한 이유도 있다.

실제 증류주 판매량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더본코리아가 운영하는 전통주 커뮤니티인 ‘백술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증류주 판매량은 그 전해에 비해 280% 늘어났다. 주종별 매출 구성비도 증류주가 전체 판매량의 4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처럼 전통소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이에 따라 증류주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양조장이 생겨나고, 증류기를 도입하는 양조장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생산한 전통소주를 몇 년 간 항아리에서 숙성시키고 있는 양조장들도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위스키처럼 다양하면서도 뚜렷한 향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전통주모임처럼 전통소주 내리는 걸 경험해보고 시음해보고 또 주변에 경험을 나누다보면 점점 전통소주의 저변이 넓어지리라는 점은 다행일 것이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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