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

경북경제진흥원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육성을 위한 경제정책전문기관이다. 정책자금 지원부터 국내외 마케팅, 일자리 창출, 강소기업 육성까지 다양한 사업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최근 진흥원의 역할과 방향성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단순한 사업 수행기관을 넘어 지역경제를 설계하고 연결하는 전략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경제진흥원이 선보인 ‘AI 쇼호스트’는 인공지능 아바타가 제품을 설명하고 실시간으로 고객과 대화한다. 경북경제진흥원 제공.

◆‘기술이 판매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국내 시장만 바라봐선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은 장기 경제침체 속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냈다. 그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새로운 상권을 개척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 왔다”고 했다. 이미 글로벌과 온라인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하지만 글로벌과 온라인에 진출해도 ‘시장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물건이 있는데도 충분히 팔리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리기 일쑤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질문에 송 원장은 “그래서 우리는 AI를 활용한 e커머스 혁신 전략을 추진한다”고 답했다.

‘AI 쇼호스트’는 인공지능 아바타가 제품을 설명하고 실시간으로 고객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4시간 방송이 가능한데 비용까지 저렴하다. 지난해 포항의 한 업체는 1회 방송으로 천만원 이상을 판매하기도 했다.

송 원장은 “GPT와 같은 최신 AI 기술은 전문인력이 없어도 고품질의 콘텐츠와 마케팅 전략을 구현할 수 있게 해 준다”며 “향후 진흥원의 역할은 기술이 곧 마케팅 역량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그는 ‘AI Activator(인공지능 촉진자)’를 강조해 왔다.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비즈니스 활성화의 촉매제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AI를 통해 기업의 아이디어를 실행 가능한 형태로 구현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며,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지원해 비즈니스 성과를 높이는 것이 그가 그린 청사진이다.

이미 진흥원은 AI 쇼호스트, AI 상세페이지 자동제작, 데이터 기반 상권 분석 등의 사업을 통해 이를 구체화했다. 송 원장은 “이제 중소기업들도 값비싼 전문 인력 없이 고품질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고 정교한 비즈니스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열린 ‘경북세일페스타’. 네이버, 쿠팡, 11번가 등 15개 온라인플랫폼 입점부터 상품 등록, 콘텐츠 제작, 키워드 마케팅까지 전과정을 지원하는 통합 모델로 만들었다. 경북경제진흥원 제공.

◆‘어디서 파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최근 백화점, 대형 쇼핑몰 같은 오프라인 매장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제품을 경험하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쇼루밍’ 현상 때문이다. 이제 오프라인 매장은 판매가 아닌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어디서 파느냐’는 현대 유통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다. 그만큼 디지털 환경에선 ‘상품력’보다 ‘노출력’이 중요해 졌다. 진흥원이 ‘경북세일페스타’를 진행하며 네이버, 쿠팡, 11번가 등 15개 온라인플랫폼 입점부터 상품 등록, 콘텐츠 제작, 키워드 마케팅까지 전과정을 지원하는 통합 모델로 만들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아마존, 쇼피, 큐텐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경북 기업들의 제품을 입점‘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전략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 10억 원 내외의 매출을 달성했고 한국의 생들기름과 고춧가루 등 14종의 상품이 아마존 카테고리별 TOP 100에 선정됐다.

진흥원은 외부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통해 유동 인구, 소비 패턴, 경쟁업체 분포를 분석하고 맞춤형 전략을 제공하는 ‘상권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외식업 CEO 마스터스쿨’이다. AI 기술로 상권을 분석하고 소비자 행동 패턴을 파악해 메뉴를 개발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방식으로 해법을 제시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참여업체들의 매출이 실제로 증가한 것. 송 원장은 “데이터는 이제 단순 수치가 아니다. 전략이 되고 실행이 되며 변화의 근거가 된다”고 했다.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 인터뷰>

-경북경제진흥원의 역할과 방향성이 이전과는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흥원을 단순 사업 수행기관이 아닌 정책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완성하는 실행형 전략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변화의 중심에는 AI, ESG, e커머스의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AI는 정책 기획과 성과 평가의 방식을 바꾸고, ESG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며, e커머스는 지역기업의 판로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변화의 도구다. 이런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AI와 데이터 기반의 정책 운영 체계를 도입해 사업 기획–수요 파악–성과 분석–환류까지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조직을 설계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기업 지원과 조직 내부의 디지털 전환이 주목받고 있다.

▲AI가 도구가 아니라, 정책의 기획력과 실행력을 동시에 확장하는 기반 인프라라는 인식 아래 AI를 공공정책 전반에 통합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AI 쇼호스트, 상세페이지 자동제작, 데이터 기반 마케팅 전략 분석 등을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디지털 전환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내부적으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비서를 도입해 기획서 초
안 작성, 홍보문 작성, 실적 보고서 요약, 성과 분석 자동화 등 행정업무의 구조적 혁신을 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직원들의 전문성과 업무 만족도까지 끌어올리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CES 공동관 운영 등 진흥원의 글로벌 진출 정책이 눈에 띈다. 기술기업의 해외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어떤 전략을 추진하고 있나.

▲단순한 전시 지원을 넘어 기획–진출–확장의 흐름을 갖춘 전략 실행 기관으로서 역할을 계속 강화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CES 패스트 트랙’이다. 기술 검증, IR(기업 설명회) 피칭, 투자 유치, 유통 상담 등 단계별 맞춤 컨설팅을 통해 기업들이 국제 행사에 전략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동시에 CES 이후를 대비한 ‘포스트 CES 프로그램’을 운영해 글로벌 플랫폼 입점, 제품 브랜딩, 해외 파트너십 연계, 영상 콘텐츠 제작 등 사후 지원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외식업 CEO 마스터스쿨’ 1기 수료식. AI 기술로 상권을 분석하고 소비자 행동 패턴을 파악해 메뉴를 개발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워 매출 증가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경북경제진흥원 제공.

-최근 ‘외식업 CEO 마스터스쿨’과 같은 프로그램이 소상공인 지원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외식업 CEO 마스터스쿨’의 경우 전통적인 창업교육과 달리 상권분석, 경쟁사 분석, 고객 리뷰 기반 마케팅 개선, ChatGPT 기반 콘텐츠 기획 등 디지털 도구를 실무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단순히 수강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매장 데이터를 직접 해석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설계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29개 업체가 참여한 1기 시범 운영에선 점심시간 매출 데이터를 분석해 메뉴를 변경했고 AI를 통한 마케팅 전략을 바꿔 매출 상승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진흥원은 올해부터 데이터 기반 소상공인 육성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등 많은 청년 창업 지원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 사업들의 핵심 방향은 무엇인가.

▲단순한 창업 지원을 넘어 청년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진흥원은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를 통해 300개 이상의 창업팀을 배출하며 지역에 다양한 로컬 창업 모델을 만들었다. 복합문화공간 운영, 지역 콘텐츠 기획, 온라인 셀러, 지역관광 연계 비즈니스 등 지역성과 창의성이 결합된 모델이 다수 등장한 것이 큰 특징이다. 최근에는 ‘K-로컬창업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확장하고 있다. 창업자 간 커뮤니티, 지역사회 봉사활동, 로컬 비즈니스 네트워킹 등을 통해, 지역 청년이 단순한 창업가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주체가 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ESG가 글로벌 경영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진흥원이 추진하는 ESG 정책과 기업 지원 체계는.

▲과거에는 ESG를 대기업의 선택적 과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에게도 ESG는 경쟁력이자 생존 조건이 됐다. 수출, 납품, 인증, 투자 등 거의 모든 경영 활동에서 ESG 요소가 실질적인 진입장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흥원은 ‘전주기 실행체계’를 구축해 중소기업이 ESG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진단–보고서–인증–설비 투자까지 이어지는 이 체계는 ESG를 전략과 실행으로 연결하는 도구로 설계돼 있다. 특히 올해는 신용보증기금, 한국에너지공단, 교통안전공단, 전문 컨설팅 기관 등과의 협업을 강화해 ESG 실천기업에 대해 보증 지원, 에너지 설비 투자, 태양광 설치와 RE100(재생 에너지 100% 사용) 인증, 국제표준화기구(ISO)·녹색인증 취득,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 작성까지 지원하는 통합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준비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있다면.

▲단순한 출산·보육 지원을 넘어 여성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와 청년이 일과 삶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정주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우선 ‘자기경영 여성창업’ 모델 발굴을 위한 새로운 정책 실험을 시작했다. 여성에게 충분한 시간과 소득을 보장하는 창업 구조를 지역 안에서 실현하는 것을 목표다. 현재 20여 명 이상의 여성 창업자들과 내·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로컬 비즈니스로 확산 가능한 다양한 창업 유형을 도출 중이다. 또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주4일 근무제 시범사업, 청년 정주 공간인 청년빌리지 조성, 그리고 여가와 일·지역정착을 결합한 ‘청년 4+3 워라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지역의 기술력 있는 기업의 성장을 돕기 위해 경북PRIDE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유망기업 IPO(상장) 활성화 지원사업’도 새롭게 시작한다. 기업가치평가, 회계·법률 자문, 상장 전략 컨설팅 등 상장에 필요한 전과정을 패키지로 지원해 지역의 강소기업이 글로벌 투자 생태계로 진입할 수 있는 성장 사다리를 제공하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향후 변화하게 될 진흥원의 역할과 방향성, 지역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경북경제진흥원은 단순히 사업을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정책으로 설계하고 현장에서 그 해답을 찾고 다시 전략으로 환류시키는 구조를 만드는 전략기관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정책 기획 역량을 데이터 기반으로 강화하고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 네트워크를 넓히며 무엇보다 현장에서 실증 가능한 실행 모델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전략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디지털 전환, e커머스 확장, ESG 내재화라는 3대 전략을 통해 지역의 산업과 시장이 바뀌고 있고 그 중심에 진흥원이 설계자이자 실행 파트너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내실있는 정책을 통해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고 그 연결이 성장을 만들어내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

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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