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별무리아트센터에서 28일(금)까지
전국적인 도시화 붐과 함께 청년인구의 수도권 유출과 지역 농산어촌의 고령화·소멸화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를 늦추거나 보완하면서도 농산어촌 골골이 사람사는 동네로 만들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귀촌귀농 사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진행된 귀농귀촌 사업은 거의 대부분 농업기반 모델이었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고, 송곳 꽂을 땅 한뼘도 없는 이들에게 귀농귀촌은 빛좋은 슬로건일 뿐 객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이 되기에는 힘든 점이 많다.
농사가 아닌 다른 여건 제공 등이 귀농귀촌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다양한 대답과 대응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을 가진 영역이 바로 문화와 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귀촌 사업이다. 이 문화귀촌 사업은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일과 창작이 함께 이루어지는 정주방식이다. 요즘 뜨는 여행트렌드인 런케이션(러닝 learning+여행 vacation)과 결합되어 영천에서도 문화귀촌 프로젝트가 선보였다.
도시사람콘텐츠랩(대표 강구민)은 문화귀촌 커넥팅 센터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7일(월)부터 오는 28일(금)까지 영천에서 태어난 백신애·조경희·유미영 여성 예술가 3인의 특별전시회를 조명하는 ‘창작의 여(女)정 : 치열한 삶의 흔적, 예술로 이어지다'를 별무리아트센터(영천시 구읍1길 9)에서 열고 있다.
이번 창작의 여정에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모두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과 대화하고 삶의 경험을 예술로 확장시켜 나갔던 백신애(1908~1939), 고(故)조경희(1970~2024), 유미영 세 영천 출신 여성창작자들의 삶과 작품이 주인공이다. 일제 강점기, 여성의 목소리가 쉽게 지워지던 시대에 문학으로 사회를 비추었던 백신애, 삶의 상처와 존재의 질문을 조형언어로 풀어내며 여성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던 조경희, 자연과 인간 그리고 감각과 존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각으로 남는 예술'을 실천하고 있는 유미영 등 세 영천 출신 작고 혹은 현존 여성작가들은 매번 마주해야하는 고초롭고 쓸쓸하거나 매시간 마주해야하는 고통의 시간과 상처를 극복하고 내가 나일 수 있는 유일한 표현방법으로 예술을 선택했다.
‘문화귀촌 런케이션’ 이라는 아직은 낯선 방법으로 시도된 이 창작의 여정 특별전은 경북 영천이라는 장소를 살았던 과거의 여성예술가 백신애, 현재를 살았던 조경희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유미영 세 예술가의 개인 서사를 단순한 스토리로 두지 않고 여성의 보편적 서사로 주목하고 있는 점이 특별하다.
“자신의 삶에 사회변동, 그림자, 상처를 틈입하게 내버려두고, 되려 작품의 물성과 재질에 그 생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 그야말로 우리가 예술이라 부를만한 것이 창조되었다”는 강구민 도시사람콘텐츠랩 대표는 “이 세 여성작가가 삶의 고통과 상처로 벼랑 끝에 설지언정 자신의 정체성 만큼은 더욱 강렬하게 표출하면서 예술가의 서사와 작품이 단단히 연결되어있다”고 강조했다.
금번 창작의 여정 특별전시를 기획한 손해린 도시사람콘텐츠랩 팀장은 “이 세명의 여성 예술가들이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단순히 힘든 삶을 살았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처한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조건을 피하지 않고 예술가로 마주했던 삶의 태도”라면서 “이번 전시는 개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던 여성예술인이 어떻게 예술로 존재했는지를 탐구하는 기회”라고 전시회 기획의도를 밝혔다.
영천지역이 낳은 여성예술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흐름으로 보여주는 세 여성창작인을 통해 영천의 예술적 서사·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는 이번 특별전시회는 영천을 지키는 농부시인 이중기,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이자 작가인 최성규, 대구가톨릭대 김동일 교수 그리고 유미영 작가의 자문과 발제에 힘입은 바 크다.
한편 도시사람콘텐츠랩은 이번 ‘창작의 여정’ 특별전시 외에도 지난 7월부터 대구가톨릭대학교, 성운대학교, 대구대학교 학생들과 함께하는 관광콘텐츠 런케이션, 전국 청년들과 함께하는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겸한 런케이션, 청통중학교와 대구의 한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예술런케이션 등 30가지의 런케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